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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함성, 포천 3.1운동 만세시위지를 걷다.
2022-02-24 조회수 : 3513

시민기자 윤민영

 

2022년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3주년 되는 해이다. 스마트폰은 물론 전화도 거의 없던 그 시절, 어떻게 많은 사람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두 달이 넘게 거리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외칠 수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포천의 3.1운동 발자취를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의 소식은 곧바로 포천에도 알려져 3월 13일 오전 11시경 포천공립보통학교(현.포천초등학교)와 영평공립보통학교(현.영평초등학교)에서 만세시위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날 포천공립보통학교 학생 100여 명은 일본인 교원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불러 포천 지방에 3·1운동의 첫 함성을 울렸다. 같은 날에 영평공립보통학교에서도 3학년 학생인 정수환은 3·4학년학생들에게 철원과 포천에 있는 다른 학교들은 이미 3·1운동에 호응하여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동맹휴학과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나설 것을 권유했으나 일본인 교원들의 제지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어린 학생들의 만세시위에 자극을 받은 어른들의 시위가 바로 이어졌다.

ⓒ시민기자 윤민영

3월 24일 소흘면, 가산면 주민들 약 600여 명은 송우리헌병분견소 인근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주동자 1명이 체포되자, 더 강하게 저항하며 시위를 펼쳤다. 일본 경찰이 칼을 휘둘렀고 시위 대원 중 부상자가 여럿 발생하였다. 같은 날 영중면 주민들은 면사무소를 공격하여 유리와 창문을 깨고 친일 면장을 구타한 뒤 일시 물러났다가 다시 영평헌병분견소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시민기자 윤민영

3월 29일 소흘면 무봉리에서는 1,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 시위를 벌이며 무봉리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때 시위를 주도한 5명이 송우리헌병주재소에 체포되었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같은 날 군내면 주민 200여 명도 유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벌였다. 신북면의 주요 인사가 비밀리에 모여 서울의 천도교 본부로 사람을 보내 연락을 주고받아 3월 29일 밤 동리에 “3월 30일 신북면사무소 부근에 집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라”라는 통문이 나돌았다. 통문을 받은 동민들은 이 통문을 다른 이웃들에게로 돌리면서 밤사이 다음날의 만세시위 계획이 면민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시민기자 윤민영

3월 30일 신북면사무소 앞에는 포천 지방 각 지역 주민들에게 시위운동 계획을 전파한 결과 신북면·일동면·이동면·영중면 등에서 2,0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이때 한 청년이 “여러분, 우리나라는 독립되었으며 세계 각국이 우리를 원조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일장의 연설을 하여 군중들의 피를 끓게 하였으며, 이어 군중들의 “대한독립만세”의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같은 날 소흘면·가산면 주민 1,000명이 다시 모여 독립만세 시위행진을 벌였으며, 송우리헌병분견소를 습격하여 경찰과 충돌하였다. 이때의 총격으로 최석휴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시민기자 윤민영

4월 1일 일동면 기산리의 주민 200여 명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펼쳤다. 4월 3일 신북면 삼정리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있었고 같은 날, 일동면 장암리의 주민 500여 명과 노곡리 주민 400여 명도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4월 10일 관인면에서는 기독교 청년 조아당, 박용길 등을 중심으로 주민 600여 명이 참여해 만세운동을 벌였으나 주민 31명이 검거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시민기자 윤민영

이렇게 3월 13일부터 시작된 포천의 함성은 4월 11일까지 뜨겁게 울려 퍼졌다.

시간을 따라 그날의 발자국을 따라가보며 벅찬 감동을 느꼈고 역사가 과거만이 아닌 현재와 맞닿아 있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포천의 3.1운동은 학생들의 외침과 참여가 컸던 만큼 아이와 함께 포천지역의 만세시위지를 탐방해 보며 그날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좋을 것이다.

 

* 포천초 만세시위지 : 신읍길 40 포천초등학교

* 영평초 만세시위지 : 전영로1429번길 5 영평초등학교

* 무봉리 만세시위지 : 거친봉이1길 61

* 신북면 만세시위지 : 호국로 2064

* 송우리 만세시위지 : 솔모루로 79

* 관인면 3.1만세운동 기념비 : 창동로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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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된 의견글 5
  • 홍이산 2022-02-24 삭제
    덕분에 포천의 3.1운동 발자취를 따라 갈 볼 수 있겠네요. 역사의 재미를 알아가는 지금 좋은 공부했어요.
  • 김연희 2022-02-24 삭제
    3.1운동의 역사의 발자취를 세세히도 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취재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많은 공부 했습니다.
  • 김정옥 2022-02-24 삭제
    3.1절을 맞이하여 좋은 기사가 놀라왔네요. 우리의역사. 국사의 중요함을 새삼 느껴봅니다.
  • 이재훈 2022-02-24 삭제
    사진과 함께 좋은 기사를 읽다보니 3.1절이 다가오네요. 대통령 선거등으로 잊어 버리거나 소홀해지기 쉬운것 같은데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 임동호 2022-02-24 삭제
    역사가 과거만이 아닌 현재와 맞닿아 있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윤민영기자님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일본의 불매운동을 하는 현시대에도 애국하는 길이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기사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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