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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모든 것, 코버월드
우리 돈의 역사를 알아보자!
2021-08-12 조회수 : 3375
시민기자 이화준


코로나19로 인해 집합금지가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 여름 방학을 맞아 갈 곳 없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포천시 군내면 청성로72에 있는 코버월드를 소개한다. 코버월드는 전 세계 240여 개국의 화폐와 전통 소품 그리고 책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복합공간이기에 도슨트 설명은 꼭 들어야 한다.

▲북한 지폐ⓒ시민기자 이화준

코버월드 2층 전시실 입구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북한 돈이 전시되어 있다. 북한도 다양한 동전과 지폐를 만들었고 화폐 개혁을 통해 다양한 돈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북한 하면 달러 혹은 유로를 위조하는 슈퍼노트(진짜 같은 가짜 돈)를 만드는 나라로 유명하기에 북한 돈 역시 쉽게 위조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머리카락과 솔잎 등 세세한 묘사가 있어 쉽게 위조할 수 없다고 한다. 역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자신들은 다른 나라의 돈을 위조하지만, 자기네 돈은 위조를 못 하게 꽁꽁 묶어뒀다는 생각에 괘씸하단 생각이 든다.

▲보조 설명 도구ⓒ시민기자 이화준

코버월드 전시물에 대한 QR코드와 유튜브(https://www.youtube.com/channel/UC0ppw-rCjqkllJbO5h3VtQA/videos) 영상을 통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으니 곳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 보고 듣고 이해하고 지나가자! 
 


화폐의 등장

우리나라 화폐의 역사는 금속 화폐가 나오기 전까지 쌀, 베, 곡물 등의 물품 화폐를 사용했다. 고려 시대 상업이 크게 발달하며 금속 화폐가 유통됐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동전인 해동통보가 이때 만들어졌다. 그전에는 화폐인지 물병인지 구별이 안 되는 재미난 모양이 은병이 만들어졌는데, 워낙 고액인지라 일반 백성들은 구경도 못 했다고 한다. 고려 996년(성종 15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철전인 건원중보를 발행하였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고 생각했던 동양의 세계관을 반영하여 둥근 원형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 모양이었는데, 조선 시대까지 발행된 대부분의 주화도 이 모양을 띠었다. 이후 998년에 동국중보와 동국통보, 1102(숙종 7년)에는 해동통보가, 1103년에는 해동중보, 삼한중보가 각각 발행되었다. 또한 거액 거래에 사용할 목적으로 은화도 발행되었는데 1101(숙종 6년) 은 1근으로 우리나라 지형을 본뜬 은병이 발행된 데 이어, 1287년(충렬왕 13년)에는 은 덩어리를 쪼개어 쓸 수 있게 만든 쇄은이 화폐로 유통되었다. 1331년(충혜왕 1년)에는 작은 화폐에도 사용할 수 있는 소은병이 만들어졌다.

▲세종 때 만들어진 조선통보 해서체ⓒ시민기자 이화준

고려말 원나라 지배 시절 ‘교초’라는 지폐를 사용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 태종 2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지폐인 저화를 발행하였다. 1423년(세종 5년)에는 동전인 조선통보 해서체를 발행한 데 이어, 1464년(세조 10년)에는 화살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폐를 법화로 사용하는 정책을 시도했지만, 물품화폐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상평통보ⓒ시민기자 이화준

상평통보는 1678년(숙종 4년) 영의정 허적 등의 건의로 발행되어 대한제국 1908년(융희 2년)까지 200여 년간 사용된 강제 통용력이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화이다. 상평통보의 상평은 ‘상시평준’의 줄임말로 항상 가치가 일정하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중앙은행의 주요 역할인 물가 안정의 의미가 담겨 있다. 상평통보 뒷면에는 주전소를 나타내는 주전소 명을 약호(호조는 戶, 평양 감염은 平)자로 표시하였다.

▲중앙관서 및 지방관청에서도 발행한 상평통보ⓒ시민기자 이화준

이 화폐는 국가기관 및 지방 관서 등 48개 기관의 주전소에서 주조되었다. 화폐 단위는 1관=10냥=100전=1,000문이라는 십진법 방식이 사용되었다. 상평통보의 종류는 제조 연도순에 따라 무배자전, 단자전, 당이전, 당이전 천자문전, 중형전, 당일전, 당백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당이전ⓒ시민기자 이화준

1679년(숙종 5년)에 이전의 단자전보다 규격이 큰 당이전이 제조되었다. 33개 주전소에서 주조되었으며, 단자전과 구별하기 위하여 뒷면 아랫부분에 ‘이二’자를 표시하였다. 처음에는 단자전과 같이 사용되었으나 점차 당이전만 사용되었다. 당이전은 과잉 주조로 인한 폐해가 속출하여 1697년 주조가 중단되었다가 1731년 화폐 부족을 해결하고 흉년으로 인한 빈민구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이 재개되었다.

▲당이전 천자문전ⓒ시민기자 이화준

1732년(영조 8년) 상평통보 수요가 증가하면서 엽전의 품질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뒷면 아랫부분에 ‘이二’자 대신 주전소의 가마별로 천자문을 한자씩 넣은 천자문전이 발행되었다. 천자문전에는 백성을 교화하려는 고유적인 의미가 반영된 것으로, ‘平’자 우측에 ‘二’자가 새겨진 천자문전은 天에서 水까지 44가지가 발행되었다.

▲중형전ⓒ시민기자 이화준

1752년(영조 28년) 상평통보의 재료인 구리를 절감하기 위해 당이전의 무게와 크기가 약간 축소된 중형전이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중앙의 군사부서에서 발행되었다. 뒷면 하부의 가마 표시가 천자문순 이외에 오행순(五行順)이 새로 나오게 되었고, 통영 관리영에서는 제조연대를 나타내는 ‘임(壬)’자(1752년 임신년: 영조 28년)와 ‘계(癸)’자(1753년 계유년 영조 29년)가 표시된 것이 발행되었다.

▲당백전ⓒ시민기자 이화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는 등 왕실에 재정이 필요하게 되자 일반 상평통보 100개분의 액면가를 가진 당백전을 발행했다. 그러나 발행의 남발로 가치가 크게 떨어져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되고, 상평통보 몇 개 수준의 가치로 추락한다. 결국 몇 년도 못 채우고 통용이 금지됐다. 개항 이후 다시 당오전과 대동은전 등을 발행하지만 생산비 과다로 1년도 안 되어 중단됐다.

▲대한제국 경성 전환국 동전ⓒ시민기자 이화준

경성 전환국은 상시로 주화를 발행하기 위해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상설 조폐 기관이다. 초기에는 당오전을 주조하였는데, 1866년(고종 23년) 독일에서 수입한 조폐기기를 설치하고 일본에서 기술자를 초빙하여 근대적인 방법으로 주화를 제작하였다. 경성 전환국에서는 애초에는 주화 15종을 제작하려 하였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시주화 제조에 그쳤고, 1888년(고종 25년)에 이르러 일원 은화, 십문 동화, 오문 동화 등 3종류의 근대 신식주화를 제조하였다. 여기에는 쌍용 무늬, 태극 무늬 그리고 오얏나무 가지가 도안으로 사용되었으며 개국(開國)이라는 연호가 사용되었다. 화폐단위는 한글 ‘원’자, 한자 ‘圓’, 영어 ‘WARN’이 표시되었다. 그러나 만성적인 재정 궁핍과 신식주화 발행에 따른 수익성 부진으로 주화 제조는 중단되었다.

▲대한제국 인천 전환국 동전ⓒ시민기자 이화준

경성 전환국의 신식화폐 발행이 실패로 끝난 뒤 소강상태에 있던 근대 화폐 제조와 발행은 인천 전환국의 설립으로 재개되었다. 인천으로의 위치 이전의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주화 제조용 원료 수입을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서울보다 일본인의 영향력이 강한 인천에 전환국을 설립함으로써 한국의 화폐권을 침해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인천 전환국에서 제조된 화폐는 오량 은화, 일양 은화, 두돈 오푼 백동화, 오푼 적동화, 한푼 황동화 등이다. 이 화폐들은 경성 전환국에서 제조된 화폐와 달리 전면 중앙 상부에 태극무늬 대신 오얏꽃 무늬를, 좌측에는 오얏나무 가지 대신 무궁화 가지를 도안으로 사용하였다. 화폐 단위는 원(圓), 량(兩), 푼(分)을, 연호는 개국과 광무(光武)를, 국호는 대조선과 조선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인천 전환국에서 제조된 화폐들은 제조 후 3년간이나 사장된 채 발행되지 못하였는데 이는 화폐의 제조량이 수요량보다 적었고, 신·구 화폐의 교환 비율도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 당시 국제적 역학관계 때문에 주화의 국호가 바뀌어 발행되는 사건이 있었다. 1892년 청나라의 위안스카이가 주화에 표기된 국호 대조선에서 ‘大’자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 부당한 요구는 수용되어 이후 제조되는 주화의 국호는 ‘조선’으로 변경되었다가 청일전쟁 후 ‘대조선’으로 회복되었다.

▲대한제국 용산 전환국 동전ⓒ시민기자 이화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고종황제는 이듬해 새로운 전환국 건물을 짓고 인천 전환국의 시설을 옮겨 신식화폐를 제조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화폐들은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뒷면의 도안이 종전의 쌍용에서 러시아의 전통 문양인 독수리로 바뀌었으며 반원 은화, 십 원 금화, 이십 전 은화, 오전 백동화, 일전 적동화 등이 제조되었지만 발행되지 못하고 러일전쟁 중 일본으로 보내져 다른 화폐로 개조되었다.

▲일본 오사카조폐국ⓒ시민기자 이화준

1904년 한일협정 체결 후 대한제국 재정 고문으로 부임한 일본인 메가타 슈가로는 용산 전환국을 폐지하고 조폐 시설을 일본 오사카 조폐국으로 옮겼다. 이듬해인 1905년에는 화폐 조례를 공포하였는데 그 주된 내용은 새로 발행하는 화폐는 일본 화폐와 같은 것으로 하고, 보조 화폐의 제조액을 제한하며 화폐는 일본 화폐국에서만 만들게 한다는 내용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 메가타 슈가로의 주도하에 오사카조폐국에서는 이십 원, 십 원, 오원 금화를 비롯하여 반원, 이십 전, 십 전 은화와 오전, 일전, 반전 동화를 제조하였다. 이때 제작된 주화는 쌍용 무늬, 오얏나무 가지가 도안으로 사용되었고, 단위는 원과 전(錢)이었으며 연호는 광무와 융희, 대한 등이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화폐ⓒ시민기자 이화준

13년간 이어오던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으로 일본 제국에 병합되었다. 조선 총독부는 조선은행에서 지폐만 발권하였다. 일본 식민지 시기 조선은행은 지폐에 긴 수염을 갖고 관을 쓴 노인의 상을 도안하였는데, 이 노인의 도안에는 2가지 설이 있다. 즉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성의 화신인 ‘수 노인’이라는 것 외에도 조선 말기의 문장가인 운양 김윤식의 초상이라는 것이다. 확실한 내용은 없으나 근래에는 많은 사람이 후자로 보고 있다. 한편 당시 화폐는 공식적으로 우리의 독립된 ‘원’이 아닌 일본의 화폐인 ‘앤’이었으므로, 뒷면에는 영문의 액면 표기가 ‘1 YEN’이라 되어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화폐만 공부하는데도 1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이외에도 다른 나라 화폐와 유로화 뒷면에 나라마다 다른 문양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름 방학 아이들과 함께 돈과 세계의 역사를 함께 공부해 보는 건 어떨까?

 

코버월드

주 소: 경기도 포천시 청성로 72

전 화: 031-531-8448

이용시간: 평일 10:00~17:30, 명절과 주말은 휴무.

입장요금: 일반 6,000원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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