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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사랑 바이러스
2017-06-12 조회수 : 5840

송경희(주부, 이동면)

우리 동네 현정이 엄마는 소문이 자자하다. 남편에겐 천사표 아내요, 아이들에겐 신사임당이고 시부모에게도 잘해 효부상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반대로 현정이 아빠는 쉬는 날 TV 리모컨을 잡고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 스타일로 소문이 났다. 평일은 더 심해 퇴근 후 양말을 뒤집은 채로 한 짝은 화장실 문 앞, 또 다른 한쪽은 거실 중앙에 던져 놓는다고 한다.


몇 주 전 옆집에 이사 온 은준이 엄마와 가까이 지낸 후부터 현정이네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그 착한 심성에 은준이 엄마가 불을 확 댕긴 사연은 이랬다. 은준 엄마는 일요일 아침부터 현정 엄마에게 달려와 은근슬쩍 포개진 이불 펴듯이 남편의 자랑을 풀어헤친다. 평소 남편이 일찍 일어나서 전기밥솥 코드를 꽂은 뒤 혼자 아침을 챙겨 먹고 간다는 이야기부터, 결혼 후 지금껏 아이와 남편의 운동화를 한 번도 빨아보지 않았다는 끔찍한(?) 사례까지. (은준 아빠가 빨았다는 말씀)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쉬는 날은 세탁기를 돌리고, 마른빨래는 접어주는 센스까지……. 거기다가 작업복은 집에 가져오면 부인이 고생하니 항상 회사에서 세탁하고,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사오는 꽃다발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이쯤 되면 주말에는 어김없이 굼벵이로 변신하는 남편을 바라보던 현정이 엄마는 거의 '꼭지가 돌아버릴' 지경 아닌가? 그러나 누가 봐도 은준 아빠의 아내 사랑은 착한 아빠의 표본 그 자체다. 속 터지는 현정 엄마 앞에서 자랑하는 은준 엄마가 조금 주책스럽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랑받아 마땅한 은준 아빠다.

그러던 요 며칠 전부터 현정 아빠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현정 아빠를 봤다는 사람, 일요일 낮 미장원에서 아이들 손 잡고 나오는 걸 보았다는 사람, 퇴근길 대파와 당근이 든 봉지를 들고 있는 걸 봤다는 사람들이 한둘씩 늘었다. 은준 아빠 '학습효과'가 동네에 슬슬 바이러스처럼 퍼진 것이다.

가끔 이웃들과 모여 커피라도 한잔 마실라치면 은준 엄마의 남편 자랑 때문에 그날 저녁에는 집집이 부부싸움으로 여기저기 시끌시끌했건만, 이젠 앞으로는 이웃에 부부싸움이 사라지고 온통 행복한 웃음꽃이 활짝 핀 아줌마들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은준 아빠, 참 멋진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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