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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댁네 손녀딸
2021-07-27 조회수 : 3569





어렸을 때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포천댁’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사람들이 왜 나를 ‘포천댁네 손녀딸’이라고 부르는지 몰랐었다.


한 집안사람들을 부를 때 ‘○○댁’ 이라고 부르는 것을 ‘택호(宅號)’라고 한다.

집안의 안주인이 살던 고향을 붙여서 말하게 되는 것이다.

집안의 어르신들은 나의 증조할머니가 포천에서 시집 오셨기 때문에 우리 집안을 포천댁이라고 부른다고 말씀해주셨다.


할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증조할머니는 포천에서 파주까지 먼 길을 꽃가마타고 시집 온 것이다.

이제는 집안 어르신들이 거의 돌아가셔서 물어볼 사람도 없지만

이름도 모르고, 살던 곳도 모르는 증조할머니의 고향인 포천을 나는 특별하게 생각한다.

그 친근함이 포천을 지나가는 길목 어딘가에 남아있고, 그 끈끈한 의리가 포천의 산야에 남아있다.

내 유전자의 뿌리가 포천의 들과 산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증조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한 130~40세쯤 되셨을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가며 살아오신 분들의 명(命)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얼굴도 못 본 증조할머니를 나는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포천에서 파주로 시집오며 보았을 굽이굽이 고갯길,

한탄강을 거슬러 임진강을 따라 왔을 그 길을, 증조할머니의 눈으로 바라보며 상상한다.


나의 젊은 증조할머니가 아무도 없는 먼 곳으로 시집 올 때는 어땠을까?

추운 겨울이었으면 어쩌지? 덥거나 비가 많이 오는 여름날이었으면 어쩌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살랑살랑 봄바람 부는 어느 날, 아니면 붉은 단풍과 하얀 억새가 너울너울 춤추는 가을이었으면 좋았겠다.




유난히도 구름이 멋진 여름날, 가족과 함께 찾은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 위에서 옛날 나의 젊은 증조할머니께 인사한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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