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시민에세이

  • 참여마당
  • 시민에세이
개똥봉지
2022-03-16 조회수 : 3154

 

큰 딸아이가 살고 있는 미국 버지니아에서 본 개똥 풍경은 내가 사는 포천과 사뭇 다릅니다.

하루는 출근한 딸을 배웅하고 앞마당의 잡초를 뽑고 있었습니다. 동네에 사는 40대쯤 보이는 백인 여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데 하필이면 우리집 앞 풀숲에 개가 볼일을 봤습니다.
‘저걸 어떻게 치우려나’하고 보고만 있는데 그 여자는 주머니에서 손바닥 하나 들어갈만한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 봉지를 꺼내더니 꼭 장갑 끼듯이 손에다 씌웁니다. 그러고는 그 손으로 개똥을 깨끗이 집어서 다른 손으로 봉지를 뒤집어서 꼭 묶고는 그대로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정말 기발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처리하는 과정이 어찌나 민첩하고 자연스럽던지 감탄할 지경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개 줄에 개똥 봉지용 주머니를 달고 다니는데, 개똥을 치울 때마다 우리네들 집에 위생 봉지를 박스에서 꺼내 쓰듯이 하나씩 뽑아서 씁니다. 물론, 딸 아이가 사는 동네에는 곳곳에 (내 기억으로는 개와 산책할 수 있는 곳 대부분의 장소, 가령 공원) 사진처럼 개똥 비닐봉지함을 비치해 놓았습니다.
개를 데리고 산보를 하다가 개가 똥을 싸면 저걸 한 장 뽑아서 치우라는 것인데, 보면 비닐봉지가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속에서 비닐봉지를 한 장 뽑아서 개똥을 치운 후에 아래에 있는 쓰레기 통속에 넣거나 개 주인이 챙겨갑니다.
‘뭐, 미국은 물자가 풍부해서 비닐봉지함이 늘 채워져 있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공공장소의 비품을 시민들이 그냥 가져가는 광경은 목격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네들 모습은 어떤가요?

저는 아침이면 포천 뚝변 걷는 것을 즐깁니다. 겨울에는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해를 디저트 삼아 걷습니다. 그리고 여름이면 동트기 직전에 해를 맞으며 걷습니다. 아침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것은 이웃뿐 아니라 그 이웃들의 반려견들입니다.
그리고, 개똥입니다. 포천 뚝변 산책길에는 아쉽게도 딸 아이의 버지니아에서보다 개똥을 마주하기가 쉽습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개똥을 밟는 바람에, 신발 가득 개똥 냄새를 머금고 집에 오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앞을 보고, 하늘을 보고, 이웃을 보고 해야하는 산책길은 개똥 피해서 땅을 보고 걷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게 진정 우리가 원하는 아침 산책길의 풍경일까요?
요즘은 개똥만큼이나 흔한 게 플라스틱 봉지인데 개 데리고 나갈 때 하나 준비해 가면 잘못해서 개똥녀, 개똥남 소리 듣는 것보다 훨씬 현명할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우리네들 삶, 수 많은 똥 중에 개똥은 제일 비천한 비유로 쓰였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어떤 분은 ‘새해부터 웬 개똥같은 소리” 냐 하고, 핀잔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점잖은 사람들은 글을 쓸 때도 개똥을 입에 담지 않겠다고 개 X라고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상 개똥은 오랜 시간 우리에게 친근한 말인데, 개똥참외, 개똥벌레 등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더러 귀한 자식 이름을 개똥이라 짓지 않았습니까. 천한 이름을 붙여놓으면 귀신이 잡아가지 않는다고 믿어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도 출세한 사람들 이름 중에 ‘○개동’하는 이름이 있는데 개똥이 애명을 그대로 한자로 호적에 올린 것입니다. 그리고,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했듯이 흔하디 흔한 개똥을 보리밭 비료로 쓰기도 했다고 하니, 개똥은 우리에게 친근할 뿐 아니라, 농가에서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런 ‘보물단지 개똥’이 이제는 제대로 치워지지 않아서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포천시도 언젠가 공공장소에 방치된 개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 가령, 딸아이의 동네처럼 개똥 봉지를 산책로 여기저기에 걸어두는 방법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 혹은, 스페인처럼 공공장소에 방치된 개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려동물 유전자(DNA) 등록제를 도입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스페인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이 거리에 방치된 개똥 표본을 수집해 경찰에 전달하고 경찰은 연구소에 DNA 분석을 의뢰해 견주를 추적한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지방자치단체는 거리의 개똥을 방치하는 견주들을 추적해 벌금을 물리는 방식입니다.
• 뚱딴지 같은 생각이지만, 어쩌면 반려견에게 기저귀를 채워야만 산책이 가능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미 ‘개똥’과의 전쟁은 세상 곳곳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듯합니다.
개똥과의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 없이, 서로가 웃으며 지낼 수 있기 위해서 무엇보다 견주가 반려견의 개똥은 스스로 치우는 행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포천 뚝변을 개똥 피해 땅을 보며 걷지 않고, 햇볕을 맞으며, 이웃과 눈인사 나누며 걷고 싶습니다.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목록보기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평가 5명 / 평균 5
의견글 작성
의견글을 작성해 주세요.
최대 500자 / 현재 0자
  • 계산하여 답을 쓰세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
의견글 목록
등록된 의견글 1
  • 김광천 2022-04-08 삭제
    도리돌마을에도 마을공원이있습니다. 그런데 시골이라서인지 공원에 산책하는 사람중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사람이 많습니다. 강아지 배변주머니가 있냐고 물어보면 주머니에서 봉지가 다 나오긴 합니다. 그런데 정작 강아지가 배변하면 사람은 먼산을 보고있습니다. 시스템에도 문제가있지만 우리네가 선진국이됬지만 아직 사람들은 선진국시민이 되어가는중인듯합니다. 강아지와 즐거운 산책을 즐기려면 시민의식을 장착하고 해야 주변모두가 즐거워질건데 언제쯤 그런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뒤로가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