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포천의 길을 걷다! 4. 포천천(영평천 합수점~포천공용터미널)
2017-10-19 조회수 : 4210

서상경 시민기자는 전국 도보여행 경험을 블로그에 남겨 2017년 7월 네이버 이달의 블로그로 선정되었습니다. 서상경 시민기자가 포천의 길을 걷고 그 길에 얽힌 역사와 문화 그 안의 사람들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오늘 걸은 길 : 영평천 합수점-환경자원센터-신북대교-포천공영터미널(12km, 3시간 20분)

포천천은 포천시의 최남단 소흘읍 축석령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흐르면서 크고 작은 물길을 합류하여 영평천으로 들어가는 총연장 29km의 지방하천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포천현 서쪽 5리 지점에 있다. 물 근원이 둘인데 하나는 축석현(祝石峴)에서 나오고 하나는 수원산에서 나온다. 합류하여 영평현 경계로 흘러든다."고 했으며 대동지지에는 칠리천(七里川), 대동여지도에는 한천(漢川)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지방하천 포천천ⓒ시민기자 서상경

오늘은 영평천을 만나는 지점에서 포천공영터미널까지 걷기로 합니다. 그 시작은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사근교입니다. 포천천의 둑길을 따라 걸으면 되는데 양문리를 왼쪽에 두고 남쪽으로 이어집니다.

영평천 합수점에서 1km 거리에 거사교가 있습니다. 거사교를 건너 오른쪽 둑길을 따릅니다. 영중면 양문리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지만 43번국도가 지나므로 예로부터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영중면(永中面)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포천현과 영평현이 있었는데 영평현의 중앙에 위치하여 불린 이름입니다. 양문리라는 이름은 포천천과 영평천이 합하는 곳이므로 양골, 양문 등으로 불렸고 조선시대 평구도찰방에 딸린 양문역이 있었지요.

거사리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거사리(居士里)는 조선 선조 때 지천거사 황정욱이 살았으므로 거사울, 거시울이라 한데서 유래합니다. 황정욱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대제학과 호조판서를 역임한 인물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자를 모시고 회령으로 피신하였는데 왕자와 함께 왜군의 포로가 되었지요. 이때 왜장 가토마사오로부터 선조에게 보내는 항복권유문을 쓰도록 강요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전쟁 후 길주로 유배되었습니다. 이후 왕의 특명으로 석방되어 관직에 복직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생을 즐겁게 지냈다 합니다.

그러한 동네인지라 지금도 하천변에는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주택단지 사이로 영평8경의 하나인 백로주가 보입니다. 백로주는 바위의 형상이 백로가 물속에 서 있는 모양에서 나온 이름이죠.


▲거사리ⓒ시민기자 서상경

거사리에서 직진하여 고개를 넘어갑니다. 백로주부터는 포천천의 둑길이 없어서 43번 국도를 따라야 하는 데 불편이 따르므로 고개를 넘어 포천시 환경자원센터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포천천을 만나 둑길을 걷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금주산-관모봉 줄기가 선명하고 포천천을 따라 남진하는 둑길 좌우로는 산줄기가 따라옵니다. 왼쪽은 청성산과 수원산으로 연결되고 오른쪽은 왕방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죠. 그러고 보면 우리 고장도 들판다운 들판은 거의 없고 산이 고을을 지배하는 형세입니다. 포천(抱川)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물을 안고 있는 고장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말이겠지요. 조선시대 성종 때의 문신이었던 성임은 포천을 두고 "천층산이 북쪽에 우뚝하고 한 줄기 물이 흐르는~" 고장이라고 평했습니다.


▲포천자원센터ⓒ시민기자 서상경

윤중아파트 앞에서 돌다리를 건너갑니다. 직진해도 되지만 건너편 둑길로 진행하고자 한 것입니다. 돌다리를 건너면서 하천을 자세히 살펴보니 물이 맑고 깨끗합니다. 한때는 오염되어 많은 사람에게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시민의 하천으로 되살아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하천의 건너편은 신평농공단지입니다. 전기와 식품 등 도시형 업종공장을 유치하여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1995년에 지방공업단지로 지정되었지요. 한때는 일요일에도 쉼 없이 공장이 돌아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신평리는 본래 새벌이라는 이름인데 한자로 신평(新坪)입니다. 또 인평대군의 묘가 있으므로 궁말 또는 궁동이라 하였지요.

 
▲윤중아파트 앞 징검다리ⓒ시민기자 서상경

포천도축장 앞길을 지나자 신북대교가 나옵니다. 새로 조성한 신북대교 옆에 구신북대교가 있는데 지금도 시내버스가 지나다니는 다리입니다. 포천읍으로 들어가는 신작로와 함께 오랫동안 포천을 연결하는 다리였죠.

이곳의 지명은 가채리(加采里)입니다. 가랑산 밑이어서 가취 또는 가채라 하였으므로 오늘날의 이름이 전해옵니다. 가랑산을 지난 우뚝한 높이를 가진 산이 왕방산이고 이 산줄기는 축석령까지 이어집니다. 왕방산 아래 포천시 포천읍이 자리 잡았고 건너편에 우뚝한 것은 반월산성이네요.


▲포천천의 오리ⓒ시민기자 서상경

신북대교를 지나면 하천으로 내려가 하천변에 조성된 자전거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청량한 가을하늘 아래 오늘도 시민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천변의 풍경이 매우 평화롭군요.

천변을 1km 정도 이동하여 시내 도로에 올라서면서 걷기는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강병원 사거리를 지나 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합니다. 12km의 포천천을 따라 걷는 길은 모두 3시간 20분이 소요되었네요. 가을 햇살이 내려와 걷기에 좋았고 단편적이나마 무르익어가는 포천의 가을 들판이 보기 좋았습니다. 한여름을 뺀 나머지 계절에는 이 코스를 따라 걷는 것도 즐거운 여행길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시민기자 서상경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목록보기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평가 1명 / 평균 1
의견글 작성
의견글을 작성해 주세요.
최대 500자 / 현재 0자
  • 계산하여 답을 쓰세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
뒤로가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