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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모루 마을의 전설
2019-01-29 조회수 : 3356

오래전 의정부에서 축석령을 넘어 처음으로 만나는 큰 마을이 솔모루였다. 지금은 송우리라고 부른다. 늘 푸른 소나무가 울창한 마을이어서 솔모루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기도 하고 큰 우시장이 있어서 소몰이꾼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포천시 지명유래를 보면 송우(松隅)는 솔모루의 한자 이름이다. 솔모루는 마을 서북쪽에 태봉산이 있어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송림이 무성하였고 그 모퉁이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오늘날 살펴보면 송우리 한가운데 태봉산이 우뚝하게 솟아있는데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어서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산이 있는지도 모르기에 십상이다.


▲송우리 입구의 소나무ⓒ시민기자 서상경

예전에 태봉산은 마을을 싸안을 듯이 다정하게 내려다보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태봉이라는 이름은 고려 왕녀의 태를 묻은 곳이라는 데서 나왔다. 경관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옥녀봉이라고도 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의 소생인 정희왕후 아지(阿只)의 태를 태워서 재를 매장한 뒤로 태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오늘날 태봉산의 정상에는 태를 태워 재를 담은 태항은 도굴되어 사라지고 태항을 받치던 석대가 남아 있어 옛 태봉임을 전해주고 있다.


▲태봉산 산책로ⓒ시민기자 서상경


▲태봉산 정상의 석대ⓒ시민기자 서상경

태봉산 아래 솔모루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오래전 포천 고을은 크고 힘세며 순하고 일 잘하는 소를 많이 길러서 송우리 시장에 내다 파는 부지런한 농부가 많이 사는 고을이었다. 솔모루 마을에는 김 진사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 집은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소를 살찌게 기르는 부지런한 농가였고 선비 집안이었다. 그 집안 며느리가 정말 오래 기다려온 옥동자를 낳았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생겼다. 펑펑 샘솟듯 쏟아지던 며느리의 젖줄이 하루아침에 뚝 그치고 말았다. 김 진사 댁 마님은 병이 날 지경이었고 사방으로 젖이 잘 나오는 약을 구였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산나물을 뜯으러 태봉산에 올랐다. 수리취, 다래순, 산도라지, 더덕 등 맛난 산채를 캐서 내려오는데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준수한 태봉산이 김 진사 댁이나 마을을 위해서 무슨 일인가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봉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었고 며느리의 젖에서 꿀 같은 젖이 펑펑 쏟아지기를 기원했다. 김 진사 댁 마님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꿈에 신령이 나타났다.

“내일 아침 일찍 표주박을 들고 태봉산 밑으로 가보시오. 맑고 싱그런 샘물이 솟을 것이니 그 샘물을 떠다 마시면 마님의 소원을 이룰 것이오.”

꿈에서 깨어난 김 진사 댁 마님은 며느리를 데리고 태봉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성껏 빌었더니 갑자기 조용하던 태봉산 기슭에서 샘물이 펑펑 솟는 것이었다. 하루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김 진사 댁 며느리의 젖샘도 시원스레 터졌다.

소문은 퍼졌고 젖이 부족하거나 나오지 않는 여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태봉산과 젖샘은 유명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태봉산 기슭에다 소나무를 심고 정성 들여 키운 탓에 샘물을 주신 거라 믿었다. 또 어떤 이는 태봉산 신령을 정성껏 모신 덕분이라고도 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솔모루 마을의 태봉산 기슭에는 젖샘이라는 깨끗한 샘물이 펑펑 쉬지 않고 솟아서 길손들의 목을 축여주었다고 한다.


▲태봉산 기슭 쉼터ⓒ시민기자 서상경


▲태봉산의 소나무ⓒ시민기자 서상경
궁금했다. 오늘날에도 태봉산 기슭에 젖샘이 있지는 않을까 확인해보고 싶었다. 송우리 버스터미널에서 농협 골목을 따라 태봉을 찾았다. 정상을 올라 석대를 확인하고 울창한 나무 사이를 지나 산 중턱까지 내려갔다. 산기슭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마을주민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젖샘은 찾지 못했다. 노인 한 분을 만나 젖샘이라 부르는 약수터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있긴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땅에 파묻히고 없어.”

오늘날 송우리 도심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태봉산은 시민의 쉼터인 태봉공원으로 바뀌었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태봉산 주변 시골 마을은 아파트와 고층 건물로 변했지만, 솔모루 마을 전설은 지금도 살아 있다. 노인분이 말한 약수터가 옛 젖샘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약수터 하나 정겹게 남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민기자 서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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