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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저수지 기행 ② 마전 저수지, 밤밭 저수지, 우금 저수지
금현리 지석묘와 육사 생도 참전비까지
2019-11-18 조회수 : 4096

시민기자 이화준

포천 저수지 기행에서 두 번째로 둘러 볼 저수지는 가산면 마전리의 마전 저수지와 밤밭 저수지, 우금리의 우금 저수지이다. 또한, 인근에 있는 금현리 고인돌과 육사 생도 전투지를 함께 둘러보기로 한다.

마전 저수지


▲마전 저수지ⓒ시민기자 이화준

마전 저수지는 가산면 마전리 321에 있는 저수지로 직천지라고도 불린다. 홍수 예방과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55년에 착공하여, 1956년에 준공하였다. 저수지의 수혜 면적은 21㏊, 유역 면적은 91㏊이다. 총저수량은 3만 톤, 유효 저수량은 2만 7,000톤이며, 사수량*은 3,000톤이다. 둑의 길이는 360m, 둑 높이는 6m이다. 평지에 있는 저수지이기에 다른 저수지에 비해 둑이 높지 않고, 저수지도 넓지 않다. 현재는 낚시터로 이용된다.
*최저 이용 가능 수위에서 저수지 바닥까지의 저수 용량, 가뭄과 같은 비상시 이용할 수 있다.

밤밭 저수지


▲밤밭 저수지ⓒ시민기자 이화준

밤밭 저수지는 가산면 마전리 256에 있는 저수지로 홍수 예방과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59년 12월 31일에 착공하여, 1960년 12월 20일에 준공하였다. 밤밭 저수지의 수혜 면적은 10.1㏊, 유역 면적은 220㏊이다. 총저수량은 20만 3,300톤, 유효 저수량은 20만 3,300톤으로, 사수량은 없다. 둑의 길이는 122m, 둑 높이는 11.3m이다. 밤밭 저수지 역시 낚시터로 이용되고 있으며, 산책로가 없어 아쉬움을 더한다.

금현리 지석묘와 느티나무 보호수

▲금현리 지석묘와 느티나무 보호수ⓒ시민기자 이화준

청동기 시대 농경 발달로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사회집단 내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화도 발달했다. 거석문화는 부족의 힘을 상징해 당시 빈번했던 쌍방간의 전쟁을 억제하기도 했다.

금현리 지석묘는 가산면 포천로898번길 150에 자리한다. 덮개돌은 길이 5.5m, 너비 4.8m, 두께 0.65m로 마름모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무게가 약 32톤가량이다. 무덤방은 길이 1.7m, 너비 1.4m로 경기 북부지역의 지석묘 중에서는 비교적 큰 편이다.

금현리 지석묘는 일제강점기에 도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출토 유물은 알 수 없지만, 규모와 석재를 다듬은 솜씨로 보아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포천지역의 청동기 시대의 사회,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유적이다.

지석묘 옆에는 포천시 보호수 27호로 지정된 느티나무 3그루가 서 있다. 얼핏 보면 4그루처럼 보이나 한 나무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자란 것이다. 2008년 지정일 기준으로 270년 수령에 수고가 22.5m 나무 둘레 3.5m이다.

우금 저수지


▲우금 저수지ⓒ시민기자 이화준

우금 저수지는 가산면 우금리 300에 있는 저수지다. 불정산 기슭에서 흐르는 물이 우금리 방향으로 모여 약 4만 평 규모의 광대한 저수지를 만들었다. 우금 저수지는 포천 제1 평야인 가산 평야의 비옥한 토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우금 저수지 역시 낚시터로 이용되지만,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저수지 3면을 천천히 걸어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인근에 육사 생도 6.25 참전 기념비가 있어 이곳이 치열한 격전지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육사 생도 6.25 참전 기념비


▲육사 생도 전투지ⓒ시민기자 이화준

가산면 우림리 산자락에 있는 육사 생도 참전 기념비는 6.25. 전쟁 당시 육사 생도들이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 혈전을 벌인 것을 기념하고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998년 국비 지원을 받아 부지 165㎡에 1.2m 화강암 기단을 쌓고 높이 5m의 비석을 올려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불법 기습 남침으로 당시 태릉 사관학교에서 수업 중이던 육사 생도 1기 312명과 2기 330명은 전장에 나섰다. 육사 교장의 지휘하에 이곳에 출전, 남하하는 적 부대를 저지 격멸하기 위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던 중 6월 26일 오후 공산군 제3사단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포병의 지원 없이 오직 소총만으로 싸우던 육사 생도들은 실탄마저 떨어져 백병전으로 처절한 혈전을 벌였다. 인접한 의정부 지구가 적 수하에 들어가자 후퇴 명령이 하달되어 100여 명의 전사자를 두고 태릉 지역으로 철수하였다. 2002년 육군은 육군 생도들의 첫 전투지에서 유해발굴 사업을 벌여 유해 3구와 ‘육사’ 표식이 부착된 철모, 의복 등 유품 557점을 발굴했다.

가산 평야의 마른 들을 적시는 3곳의 저수지와 청동기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지석묘, 분단의 아픔과 호국정신의 표상인 6.25 참전 기념비까지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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