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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저수지 기행 ③ 쌍방죽, 황새목, 새마을 저수지

시민기자 이화준

포천은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가 큰 강이 없어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한 저수지가 발달했다. 가산면과 군내면의 저수지와 인근의 역사유적을 함께 소개해 본다.

쌍방죽 저수지
방죽(防築)은 물을 저장하기 위해 파거나, 둑으로 둘러막은 못이다. 한자로는 방축(防-막을 방, 築-쌓을 축)이기에 가산면 방축리에도 방죽이 많으리라 생각됐다. 하지만 방축리의 한자는 坊-동래 방, 築-쌓을 축으로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서로 다르다. 포천문화원의 지명 유래에 의하면, 방축리는 예전 포천군 화산(가산)면 지역으로 큰 방죽이 있으므로 방축골, 방죽골이라 했다고 한다.


 ▲쌍방죽 저수지ⓒ시민기자 이화준

이름 그대로 방죽이 2개가 나란히 붙어 있어 쌍방죽 저수지이다. 위치는 가산면 선마로 163-29(마산리 567-3)로 세종-포천고속도로 가에 자리한다. 쌍방죽 저수지가 언제 생겼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가산면 마산리 일대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정략장군 조득남 충신 정려


▲정략장군 조득남 장군 충신 정려ⓒ시민기자 이화준

가산면사무소와 쌍방죽 저수지 중간에 있는 정략장군 조득남 장군 충신정려각이다. 화현면 화성리에서 출생해 성장한 조득남 장군은 1621년(광해군 13)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북문을 지키며 항쟁하다 전사했다. 조득남 장군과 역사 이야기는 소통공감 포천소식에 올라간 취재 기사에 자세히 다루었다.
*병자호란의 충신, 조득남 장군 정려 http://news.pocheon.go.kr/aview.php?aid=16810

전주 이씨 의안대군 학천군파 경덕의 제각


▲전주 이씨 의안대군 학천군파 이경덕의 제각ⓒ시민기자 이화준

쌍방죽 저수지의 맞은편 언덕에 전주 이씨 의안대군 학천군파 이경덕 제각이 있다. 의안대군 하면 조선 최초의 세자인 이방석이 떠오르지만, 이곳의 의안대군 이화(義安大君 李和)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으로, 아버지는 환조 이자춘이고, 어머니는 후에 정안옹주로 봉해진 김 씨다. 고려 말 무신으로 요동 정벌 때 좌군도통사 이성계의 조전원수로 활약하였고, 조선 건국 후 개국좌명공신 1등, 1차 왕자의 난에서는 이방원을 도와 정사공신 1등, 2차 왕자의 난에서도 좌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의안대군과 계부인 삼한국대부인 교하 노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난 학천군 이징(鶴川君 李澄)은 고려 말에 음서로 발탁된 이후 큰아버지 태조 이성계로부터 학천군에 봉해진 후 139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이 학천군 이징의 후손인 이경덕 선생을 모시는 제각과 인근의 묘가 있지만, 이경덕 선생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황새목 저수지


▲황새목 저수지ⓒ시민기자 이화준

군내면 유교리의 황새목 저수지, 유교리(柳橋里)의 지명은 버드나무 다리가 있었으므로 유다리라 하였는데, 한자식으로 유교리가 되었다.

황새목 저수지는 홍수 예방과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45년에 착공하여 준공하였다. 총저수량은 2만 1,000t, 유효 저수량은 2만t이며, 사수량은 1,000t이다. 둑의 길이는 156m, 둑 높이는 3m이다.

황새목이란 지명이 특이해 찾아봤지만, 유래를 알 수 없고, 황새목 마을과 황새 모기 고개가 유교리에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새마을(목용동) 저수지


▲새마을(목용동) 저수지ⓒ시민기자 이화준

군내면 좌의리의 새마을(목용동) 저수지, 좌의리(左儀里)는 좌의정(左議政)이 났다고 하여 좌의지, 또는 좌의동이라 하였다. 또한 목용동(마을)은 옛날부터 저수지와 방축이 많아 동네 사람들이 목욕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을 목용동(沐浴洞)이라 하였다.

목욕동 저수지는 홍수 예방과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45년에 착공하여 준공하였다. 총저수량은 1만 2,000t, 유효 저수량은 1만 1,000t이고, 사수량은 2,000t이다. 둑의 길이는 88m, 둑 높이는 2.5m이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목용동이란 동네 이름이 없어지고, 새마을 저수지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가산면과 군내면에 있는 저수지와 지명 유례를 통해 지역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기사등록 : 2019-11-29 조회수 :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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