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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무침을 보면서 홀로 감상적인 된 그날 밤
2014-06-01 조회수 : 3755

지인들과 술 한 잔을 하고 조금 늦은 시간에 귀가를 했다. 11시쯤 들어갔으니 아주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공부하기 바쁜 고3 큰 아들과 극심한 사춘기 증후군을 겪고 있는 둘째 아들은 늦게 귀가한 애비와 말 섞을 상황이 아니었다. 아내는 자고 있었지만, 나를 위해서인지 작은 상을 하나 차려놓았다. 별 다른 반찬도 없었다. 평소 이 시간에 밥을 먹는 일이 거의 없는 나는 그저 상을 치우려다가 문득 아내가 만들어 놓은 콩나물 무침에 눈길이 갔다.

▲늦은 시간 아내가 차려 놓은 콩나물 무침ⓒ시민기자 이정식


어디서나 너무나 흔한 반찬이지만 평소에 굳이 찾지 않는 이상은 잘 보이지 않는 반찬이기도 하다. 그릇을 만져보니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아마 만든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흔한 콩나물 무침 반찬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어머니 생각이 났다. 직장을 다니시던 어머니는 매일 첫차를 타고 포천에서 서울로 통학하는 어린 아들에게 더운 아침밥 먹인다고 매일 꼭두새벽부터 부엌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셨다. 굳이 먹지 않겠다는 나에게 더운밥을 먹어야 힘을 쓴다며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이렇게 하셨다. 차 시간이 급한 나는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급한데 그 뜨거운 밥이며 국을 먹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냥 간단하게 토스트를 만들어 주시거나 빵 하나 먹고 나가면 참 좋겠는데 어머니는 매일 아침 뜨거운 밥과 국, 찌개를 내놓으셨다. 가끔은 그런 어머니께 짜증을 내기도 했다. 입천장이 데이면서 먹는 뜨거운 음식이 당연히 좋을 리 없었다. 기회만 있으면 그 아침을 먹지 않고 그대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그런 내 뒤통수에 어머니가 밥 먹고 가라며 소리치시던 날도 있었다.

ⓒ시민기자 이정식


그런 어머니의 반찬 중에 가장 내가 좋아했던 것이 바로 이 콩나물 무침이었다. 뜨겁지도 않았고, 평소 좋아하던 음식인 콩나물로 만든 것이라 먹는 것도 좋았다. 어머니는 내가 콩나물 무침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부엌으로 가서 더 만들어 오시곤 했다. 더운 밥 위에 잘 버무려진 콩나물 무침을 올려 먹는 맛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겐 별미였다. 간단하게 끓인 물로 데친 콩나물에 고춧가루와 마늘, 소금, 깨소금 같은 것만 넣고 쓱쓱 비벼 주시는데 그 맛이 참 좋았다. 결혼 후에도 나의 콩나물 사랑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요즘 이 나물을 잘 먹지 못했다.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기 때문도 있지만, 어머니께서 더 이상은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이 음식을 만들어 주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손수 만들어 본 적도 있지만 역시 간단한 음식 일수록 잘 만드는 것이 더 어렵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 밤에 아내가 만들어준 콩나물 무침은 어릴 적 먹던 바로 그 맛이 났다. 늦은 밤에 먹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나는 밥을 두 공기나 비웠다. 맛도 맛이지만 먹을수록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아침에 밥을 먹지 않고 달아나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아마도 내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학교에 늦는 한이 있어도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아침밥을 꾸역꾸역 다 먹고 갈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다 지나가는 법이다. 나와 잘 대화를 하지 않는 아들들을 보면서 나 역시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부모로서의 길을 가는구나 하고 가끔 느낀다. 콩나물 한 그릇에 홀로 괜히 감상적이 된 그 날 밤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생각이 날 것 같다.

시민기자 이정식(jefflee2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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