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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사 노스님과의 대화
2019-05-24 조회수 : 3876

시민기자 서상경


▲운악사 전경ⓒ시민기자 서상경

포천시와 가평군의 경계에 있는 운악산. 산세가 험하고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 중턱에 작은 암자 같은 운악사가 있다. 포천의 폭포 투어를 위해서 거의 2년 만에 다시 찾았더니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낯선 손님을 경계하듯 시끄럽게 짖는다. 그 바람에 스님 한 분이 나오시더니 강아지를 제지한다.

“스님, 안녕하세요? 이곳에 폭포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저기 바위처럼 보이는 것이 소꼬리 폭포지요. 지금은 갈수기라 물이 흐르지 않아 바위 형태로 있는데 장마철에 보면 장관이 따로 없어요. 폭포 상단은 좁고 내려오면서 소꼬리처럼 넓어지므로 소꼬리 폭포라는 이름이 붙었죠.”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차 한 잔을 내어놓으신다. 으레 그러한 듯 익숙한 솜씨다. 고마운 마음에 한 마디 더 여쭙는다는 것이 실수하고 말았다.

“스님, 이곳에 계시려면 적적하시겠어요?”
“적적하면 중이 아니지요. 저는 이곳 생활이 좋습니다. 사찰 주위를 청소도 하고 보살이(강아지 이름) 저놈하고 놀아주기도 하고... 지나다니는 등산객들이 들어오면 대화도 나누고 그러지요.”


▲운악사 보살이ⓒ시민기자 서상경

재작년 초겨울 이곳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보살님의 차 한 잔 대접을 받으며 쉰 적이 있었는데 운악산의 가을 단풍이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며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셨다.

“2년 전에 보살님 한 분이 계셨는데 어디 가셨나요?”
“먼 곳으로 갔죠. 작년 가을에 췌장암으로...”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차 한 잔 나누는 시간이었지만 스마트폰으로 찍은 가을 단풍을 보며 좋아하는 모습이 소녀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같이 있던 강아지는 낯선 손님이 찾아와도 꼬리를 흔들며 잘 따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보살님이 떠난 뒤 폭포위로 산책을 따라나섰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스님은 건강이 괜찮으세요?”
“나도 뭐 건강이 썩 좋지 못했어요. 요즘은 건강하게 지내요.”


▲운악사 원통보전ⓒ시민기자 서상경

올해 75세의 노스님은 운악사 주지 혜거(慧炬)다. 이제 혼자서 운악사를 지키고 계신다. 이곳에 들어온 지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처음에 들어오니 굿당이 있었는데 일일이 나무와 벽돌을 날라 지금의 사찰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운악산 자연휴양림 앞에서 이곳까지만 산길로 20분을 걸어 올라야 하는 거리인데 만만치 않은 공력이 든 사찰이다. 일반 사찰의 대응 전격인 원통보전이 있고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마당에는 손님을 맞는 사랑채 천막이 있다.

“사찰에 가장 궁금했던 것이 어떻게 먹고사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특별히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요. 김치 떨어지면 아랫동네 보살님께 전화해서 얻어먹고 등산하는 분들이 오가며 적선을 해주니 이렇게 살지요.”
“종단이 태고종이라 되어 있던데 본부에서 살림을 보태주지 않습니까?”
“조계종은 사찰살림이 모두 종단본부 소속이 되고 월급이 나오지만 우린 그러지 않아요. 개인 사찰이고 종단본부의 도움은 전혀 받지 않죠. 오히려 매년 회비를 내고 있어요.”


▲운악사 주지 혜거 스님ⓒ시민기자 서상경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사찰이라고 신선놀음으로 지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태고종 본부에 회비도 내야 하고 여름이면 20만 원, 겨울이면 40만 원 정도의 전기세도 나온다고 한다. 또한, 2018년부터 시행된 종교인 과세 대상이기도 하다.

“태양광을 설치해서 전기세를 줄여보시죠?”
“이곳은 일 년의 반은 그늘이 지고 하루에도 햇빛이 드는 시간이 짧아서 효과가 없어요. 그러잖아도 업체에서 몇 번 다녀갔는데 깊은 계곡이라 힘들겠다고 했어요.”


옛날 어느 절에 잘생긴 스님 한 분이 있었다. 그 스님을 사모하는 아랫마을 처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절에 와서 스님 공양하시는 것을 훔쳐보았다. 발우를 펼쳐 놓은 모양도 법도가 있고 음식을 먹는 것도 품위가 있어 사모하는 정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수로 그릇을 정갈하게 씻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설거지한 물을 그냥 마셔버리는 것이 아닌가. 처자는 그만 정나미가 떨어져 집으로 돌아가고 그 스님을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발우를 씻는 물을 마실 때마다 속세의 정을 끊는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문득 스님도 속세의 정을 끊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가족이 있으세요?”
“안사람은 일찍 저세상으로 떠나고 아들 둘이 있어요. 가끔 찾아와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곤 하지만 내가 이 생활이 좋은걸. 도시 아파트에 가면 하루도 못 견디고 돌아와요.”


큰 병을 앓았지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운악산의 보이지 않는 기운 덕분은 아닐까. 깊숙한 계곡에 자리한 작은 사찰은 햇빛이 거의 들지 않지만, 풍수지리에서도 터의 기운은 무시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바위를 따라 흘러내리는 차가운 석간수는 속세의 모든 것을 잊어도 좋을 정도로 맛이 좋고 차다. 굳이 운악산 정상까지 오르지 않더라도 소꼬리 폭포 옆으로 산길을 30m 오르면 천제단이 나오는데 이곳은 운악사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노스님은 편안하다고 했다.


▲운악사 표지ⓒ시민기자 서상경

“스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장마 때 폭포 구경하러 다시 들르겠습니다.”

돌아서는 길, 사찰의 모퉁이에 붙어있던 글귀가 기억에 남았다.

“계절은 여름으로 치닫는데 지팡이 하나 의지해 올라온 노(老) 보살님이 가쁜 숨 몰아쉬며 운악사 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세상에 손만큼 정직한 게 또 있을까? 때론 안아주고 감싸주고 끌어주고 때론 온갖 슬픔과 외로움의 눈물을 남몰래 닦아낸 것도 바로 저 손이었으리라. 세상에 모든 자식에겐 늙은 어머니의 ‘저’ 고단한 손이 관세음보살님의 천수이자 말 없는 자비 법문입니다.”

*운악사 정보
- 주소 : 포천시 화현면 화동로 190
- 전화 : 010-9417-2415
- 운악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왼쪽 길로 20분 정도 등산로를 따르면 운악사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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