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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이 행복한 사람들
2021-12-09 조회수 : 2817

시민기자 서상경

 

내촌면 토박이인 할아버지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내촌면 소재지에서도 제일 먼 마을에 살았다. 일곱 살 무렵 학교를 다니는데 도로가 시원치 않으니 힘들게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기억은 김구 선생의 기일이었다. 교장선생님이 훈시를 하면서 “내일 아침 10시에 묵념을 해라.”라고 하셨다. 하지만 당일 아침에는 비가 오고 천둥이 쳤다. 10시에 묵념을 하려고 하니 비가 너무 와서 힘들었던 기억이 새롭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노란 옷을 입은 군인들이 마을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는데 외할아버지가 ‘빨갱이’라고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빨갱이라면 빨간색을 입어야지 왜 노란색 옷을 입었지?’ 그게 6.25 전쟁이었던 거다. 전쟁으로 학교는 불타고 먹을 것이 없자 미군이 준 노란 옥수수빵을 먹으면서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선하다. 하지만 살고 있는 마을은 봄이면 벚꽃이 피고 풍경이 좋다.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잔잔하게 지난 일을 기억하던 할아버지는 다행히 포도농사로 시골에서도 힘들지 않게 살아왔다고 한다. 친구가 포도농사를 했는데 수확이 많다면서 권유했던 것이다.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부연 설명했다. 포도가 들어온 것은 1972년쯤이고 직접 포도농사를 시작한 것은 1980년이었단다. 105농가가 포도농사를 할 만큼 많은 농가에서 포도재배를 했지만 포도밭이 공장으로 변하면서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포천반월아트홀 전시장ⓒ시민기자 서상경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는 지난 시설을 살아온 추억이었고 마을의 역사였다. 6.25전쟁을 몸소 겪었고 어려웠던 지난 시절이었지만 행복을 놓지 않고 살았다. 이러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포천반월아트홀 전시장에서 ‘포천이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다. 포천문화재단의 문화예술 교육 연계 전시사업의 하나다. 포천시의 14개 읍면동 중에서 가산면, 관인면, 내촌면, 영북면, 일동면, 화현면의 6개 면에서 48명의 얼굴이 모여 자화상을 그렸다. 자화상에는 개인의 모습은 물론이고 어릴 적 놀던 동네의 모습과 지금의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포천에서 태어났거나 이주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분들의 이야기는 영상으로 남겨져 있다. 이 프로젝트는 어르신들의 미감을 통해서 역사를 기록하는 자화상 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르신들이 그려주신 그림과 글 자료는 도록으로 제작되어 포천시의 역사가 될 예정이라며 포천문화재단 문화관광사업팀은 설명했다.

가산면의 한 할아버지는 동네의 미루나무를 기억하여 그림에 남겼다. 6.25동이로 ‘너베기’라는 동네에 살았는데 학교 다닐 때 엄청 불편했다고 한다. 가산초등학교까지 가는데 4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다리도 없고 큰 비가 오면 학교를 가지 못한 날도 허다했다. 학교 가는 길에는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까치가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하곤 했다. 그래서 친구들하고 까치둥지의 알을 꺼내려고 높은 나무를 올라갔다. 알을 주머니에 넣고 내려오는데 알이 깨져서 호주머니가 엉망이 되곤 했다며 웃음 지었다.

▲자화상ⓒ시민기자 서상경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포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분도 있지만 이북에서 피난 온 분도 계셨다. 관인면의 어느 할머니는 12살에 피난 와서 포천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이북에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거기에 묻어 놓고 아버지와 동생 둘 같이 내려왔는데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남의 집 일을 도와주면서 생계를 잇고 살다가 결혼도 했다. 어느 날 이산가족을 찾는다는 방송이 나와 여의도 방송국으로 갔는데 동생이 일동에서 버스 차장을 하고 있었던 거다. 옆에 두고도 못 찾았는데 세 번째 만나러 가는 날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힘들게 살아온 날들이 추억 속에 남아 있음을 본다. 신랑이 너무 잘 생겨서 포천으로 시집을 왔다는 할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서 보리쌀, 감자를 먹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통일벼가 보급되어 좀 살게 되었는데 그때는 파마도 못하고 살았단다. 경동시장 파마약 재료상이 있었는데 거기서 기구를 사다가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할 정도였다며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고 하신다. 지금이 살기는 좋지만 사람의 인정은 그때가 좋았다고.

‘포천이 행복한 사람들’ 전시는 12월 15일까지 포천반월아트홀 전시장에서 계속된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화상을 보면서 지난 추억을 들어보자. 서로 닮아 꽃다운 사람들의 얼굴과 세대가 하나 되는 사람들의 얼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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