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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반가운 친구, 필름 카메라
2014-02-24 조회수 : 4903

얼마 전 둘째 아들이 자기 방을 치운답시고 방안에 쌓여 있던 물건들을 모두 밖으로 내왔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니 자기 방도 치우고 철이 드나보다 하여 대견스럽게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아직 집안 전체를 청소할 정도의 생각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기 공간에 대한 인식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런데 아들이 청소를 위해 내다 놓은 물건 중에 눈에 띄는 낯익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결혼 할 때 큰 맘 먹고 장만한 필름식 수동 미놀타 카메라였다. 당시 나는 값이 좀 나가는 이 물건을 사기 위해 집사람과 용산전자상가에 가서 엄청 아내의 기분을 맞추며 아부 비슷하게 아양을 떨었다. 그만큼 이 카메라를 갖고 싶었다.

 
사실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쓰시던 일제 수동 카메라가 집에 하나 있었다. 나는 어린 나이 때부터 그 수동 카메라를 잘도 가지고 다니며 촬영을 했었다. 전문적으로 카메라에 대한 기술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보도부장이라는 학생부 활동을 하면서 사진을 종종 찍었고, 취미생활로 친구들과 산이며 들이며 놀러 다니면서 참 많이도 찍었다.

그것은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남에게 과시하려는 욕구는 물론이고 뭔가 내가 남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참 좋았다. 결혼 하면서 장만한 이 카메라를 들고 나와 집사람은 역시나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었다.

당시에 산 필름과 인화 값이면 지금의 아주 좋은 사양의 디지털 카메라를 몇 대는 살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인가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뭔가를 팔아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도 나는 이 카메라로 근접 촬영을 하고 인화한 다음 그 사진을 다시 스캔하여 인터넷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정말 손에 익은 도구처럼 내 인생의 사진 역사를 함께 한 카메라인 셈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난 이 카메라가 우리집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이번에 만일 둘째 아들이 방청소를 하지 않았다면 난 몇 년을 숨죽이고 어둠속에 머물던 이 카메라를 결코 찾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이 참 그런가 보다. 세월이 역시 그런가 보다. 혹시라도 땅에 떨어트릴까봐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들고 다니던, 그래서 아내에게 자신보다 카메라를 더 챙긴다는 핀잔까지 듣게 만들었던 이 카메라를 이렇게 잊고 살았다니……. 1999년 인터넷 쇼핑몰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당시로서는 목돈을 들여 니콘의 400메가픽셀 카메라를 산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 때부터 인 것 같다. 이 녀석과 이렇게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화와 필름이 필요 없는 저비용의 카메라가 주는 매력에 푹 빠져 나는 그렇게 서서히 이 필름식 미놀타 카메라와 작별을 고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뒤로 알게 되었다. 사실 니콘 카메라는 그래봤자 불과 3년 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당연히 더 나은 사양의 값싼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 뒤로 소니, 캐논, 삼성 등 여러 대의 카메라로 계속해서 도구를 갈아 치우며 이런 저런 사진들을 찍어 왔다. 나는 어느 디지털 카메라도 이 필름식 카메라만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가 어떤 디지털 카메라도 이 필름식 미놀타 카메라 같은 추억과 공감을 내게 주지 못했다. 필름을 넣다가 실수한 적도 많았고, 제대로 인화가 되지 않아 안타까웠을 때도 많았고, 특히 촬영을 한 후에 인화를 하는 시간까지 몇 날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것도 이 녀석과 함께 했다. 지금은 6년 째 쓰고 있는 낡은 캐논카메라와 아는 사람을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된 팬탁스 카메라가 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 녀석들과도 언제까지 함께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래도 난 이 미놀타 카메라를 계속 만지작거릴 것이다. 방청소하는 아들 옆에서 나는 정성스럽게 이 카메라를 닦았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던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말이다.

시민기자 이정식(jefflee2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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