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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절이와 닭백숙. 저녁상의 진정한 승자는?
2014-03-08 조회수 : 4933

집사람이 겉절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냥 가만히 차를 타고 가다가 뭔가 두고 나온 사람처럼 뜬금없이 내게 말했다. 나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입안에 침이 고이면서 알싸하고 매콤하면서 아삭거리는 그것을 떠올린 것이다. 나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냥 겉절이로만 저녁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른 뭔가가 더 필요했다. 나는 닭백숙이 떠올랐고, 아내는 돼지고기 수육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이리저리 말을 돌렸지만 역시 난 닭이 더 좋아서 아내를 설득했고, 늘 그렇듯이 아내는 내 말에 져 주었다.


 
하는 김에 오이소박이도 하고 부추 무침도 하기로 했다. 나는 부추와 닭백숙을 맡았다. 팔을 걷어 부치고 으쌰 으쌰 평소보다 더 맛있게 만들고 싶었다. 이 닭을 사기 위해 마트를 세 군데를 돌았다. 내가 무슨 유명한 요리사도 아니고 셰프도 아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오늘은 바로 이 녀석이야! 하는 닭이 없었다. 그저 뽀얀 속살 드러내고 누워있는 다 같은 닭들인데 뭐 그리 유난스럽게 고르냐고 타박할 만도 했지만 아내는 그저 말없이 내 뒤를 쫓아다녔다.

 
 
부추는 내가 하도 좋아하는 야채라 언제나 야채 코너에 가면 의례 부추 값부터 보는 습관이 다 생겼을 정도이다. 오늘은 그냥 부추는 아예 없고 대신 영양부추가 싼 값에 나와 있었다. 한 줌 정도 되는 두께의 영양부추가 1,800원이면 무척 싼 편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전국의 부추 값은 아마도 내가 다 가늠할 정도이리라.

원래 우리는 이맘때면 오늘 애들에게 뭘 저녁으로 줘야 하나 하고 의견을 나눴을 텐데, 오늘은 그저 아내가 던진 그 한마디 겉절이에 둘이 꽂혀 솔직히 아이들 생각은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사람 사는 것이 참 그렇다. 처음 연애하고 결혼 할 때는 우리 둘만의 화제에 집중한다. 애가 생기면 우리 둘은 사라지고 애들이 모든 대화에 중심이었다. 이제 우리는 나이가 들어 다시 애들이 아닌 우리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가 보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세월이 우리를 데리고 또 다른 곳으로 가는가 보다.
 

 
부추를 조금 남겨 닭백숙에 함께 넣는 것은 오래된 나의 습관이다. 닭고기를 저 푹익힌 부추에 싸서 먹으면 참 맛이 달았다. 슬금슬금 아내 눈치를 보면서 한꺼번에 "따르륵" 못 따고 "따따따르르륵" 조심스럽게 소주 병 뚜껑을 땄다. 아내가 "에고 또 술이야?" 하며 눈을 흘겼지만, 난 이미 땄으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면쩍게 술 한 잔을 따랐다.

닭백숙을 만들면서 몸에 좋다는 것을 다 때려 넣고는 결국 몸에 별로인 술을 함께 먹어 상쇄시키는 참으로 비합리적인 일을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어쩌면 닭백숙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술안주로 닭백숙이 생각났다는 편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아이들은 함께 사가지고 간 햄버거로 배가 찼는지 둘째 놈만 닭다리 하나 뜯고는 떨어지고, 아내와 둘이서 모처럼 오붓하게 다리 하나 없는 닭 한 마리를 먹었다.
 

집에서 먹는 음식이 주는 행복은 아마도 돈으로 셈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이 시간 역시 얼마나 귀한지 아는 사람만 아는 원석 같은 존재이리라.
 
결국 내일은 아내의 주장대로 돼지고기를 수육으로 먹겠지만, 흐흐 나는 또 다시 한 잔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이렇게 지나 저렇게 지나 내가 승자인 것 같다.

시민기자 이정식(jefflee2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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