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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금동리 지동마을
2022-04-27 조회수 : 2577

시민기자 유재술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 봤을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한 구절. 그만큼 친숙한 이름으로 우리들 감성의 머리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청산’이라는 지명이다. 포천에 살고 있는 웬만한 사람들 역시 이 지명이 낯설지 않으리라.

ⓒ시민기자 유재술

태초의 원시림이 이러했을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 법한 우거진 숲. 그것은 청산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높은 산이 사방으로 첩첩하게 둘러싸여 있어 사람들은 산내(山內)라고도 불렀다. 어디를 가나 산이었고, 어디를 보아도 산이었다.

ⓒ시미기자 유재술

갈월 1~2리, 삼정 1~2리, 덕둔 1~2리, 금동 1~2리의 8개 법정리를 통례상 남청산, 줄여서 청산이라 부른다. 행정구역 상 과거에는 지금의 연천군에 속해있는 초성리 등을 포함해 포천군 청산면이었다가 1980년대 행정구역 개편 시에 포천시 신북면으로 다시 재편되었다.

ⓒ시민기자 유재술

청산이라는 지명을 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푸른 숲이고 그중에서도 잣나무이다.

지금이야 환갑은 청춘이지만 환갑잔치 칠순잔치가 집안의 경사였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잣을 써서 만든 유과는 잔칫상에 빠져서는 안되는 고급 식품이었다. 조선시대 임금님에게 진상할 정도였으니, 그만큼 이름값을 할 정도로 값이 좋았다. 또 제주도의 감귤나무가 어려운 집안의 자식들을 대학까지 교육시킨 대학나무였듯이 청산의 잣나무 또한 대학나무였다. 시절이 바뀌어 지금은 잣이라는 과실이 그다지 예전처럼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지 못하지만, 웬만한 집안은 이 잣나무에서 얻어지는 잣으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은 물론 서울에 장가보내 집까지 사줄 수 있는 고마운 선물의 나무였다.

ⓒ시민기자 유재술

물론 철이 되어 잣을 따기 위한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만큼 보람은 컸다.

이 잣은 청산하고도 금동리에서 주로 생산되었는데, 지동마을이라 부르는 금동2리는 천년의 세월을 우리 역사와 함께 해온 은행나무가 뭇사람들의 눈길을 끌어왔다.

ⓒ시민기자 유재술

포천시가 1982년 보호수로 지정을 하면서 수령을 잰 바로는 그 당시 950년이었던 이 나무는 그 뒤로도 약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으니 가히 천년수이다.

ⓒ시민기자 유재술

은행나무는 느티나무 회화나무와 더불어 학자수(學者樹)이다. 학문이 높은 사람이 바로 정치가이던 옛날에, 공자가 제자들과 더불어 학문을 논(論)할 때 바로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론을 한데서 비롯된 행단(杏壇)이 유래된 말이다.

ⓒ시민기자 유재술

천년 거목 은행나무가 있으니 이에 따른 전설이 어찌 없을까.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 병석에 누운 어머니가 복숭아를 먹고 싶다는 소원에 산신령도 감동하여 효심이 깊은 효자 아들에게 기적의 복숭아를 선물하여 모친의 기력을 회복시켰다는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이 나무에도 위기는 있었다. 일제하 1927년 이 땅의 소유자가 이 은행나무를 베어내려 했었다. 그러자 김두열 외 동네 사람 12명이 공동으로 매수하여 지금까지 관리해 오고 있다.

이 천년수 은행나무와 인접한 곳에 또 다른 은행나무가 있는데 기이한 일이 수년 전부터 관찰되고 있다.

ⓒ시민기자 유재술

커다란 은행나무 가지에 벚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인데, 아마도 새가 벚 열매를 먹고 그 씨를 이 은행나무 가지에 배설한 것이 아닐까 추측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벚나무에서 벚꽃이 피기도 했다.

서양의 근대문명이 전해지기 이전 조선의 선비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종이는 주로 닥나무를 이용해서 만드는 한지(韓紙)였다. 이 지동(紙洞)마을에도 많은 닥채나무를 많이 심어 질 좋은 한지를 만들어 대처로 내보냈으며, 삼나무를 심어 삼베를 짜는대서 이 동네의 지명이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한지의 품질이 우수해 각국의 공예품 보존과 복원에 필수품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 마을의 지명에 맞게 다시 한지의 생산이 다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동마을은 어느 마을에도 뒤지지 않는 첨단정보화 마을이다. 이제 코로나-19 시대의 각종 규제가 서서히 완화되고 있는 시점에 ‘지동산촌마을’이 이에 거는 기대가 크다.

동두천으로 넘어가는 왕방산 자락에는 피톤치드 향이 가득한 ‘포천 치유의 숲‘이 있어 숲과 관련된 힐링 체험과 자연학습의 장소로 거듭나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청산에는 ‘어메이징 파크’를 비롯한 ‘허브아일랜드’와 ‘나남수목원’ 등의 피로에 지친 도시민을 위한 힐링 장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포천 국궁의 요람 ‘대군정’이 있어 연계된 관광명소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글을 쓰는 이의 고향 또한 청산으로, 아래의 시 한수로 글을 쓰는 감상을 대신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청산에 살고지고>

산이 좋아 산에 사는
청산 사람아,

송림백림(송林栢林) 우거진 숲에
높은 하늘 바라보나니!

잣 한송이 얻었으나
석양길이 멀고 멀어
가는 길만 재촉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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