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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생각해보는 포천과 인연 있는 민족지도자 두 사람
2011-08-16 조회수 : 5356

광복과 함께 온 해방의 기쁨은 우리가 지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살면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한 우리민족의 잊을 수 없는 역사다. 언제나 그렇듯이 큰일을 치루면서 많은 일들을 한 영웅들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포천도 그런 일본의 강제합병과 해방이라는 민족사에 깊게 뿌리 내린 역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있어 뜻 깊은 광복절에 한번 돌아보고자 한다.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은 주로 종교인들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에 종교인들이 비교적 새로운 문물을 많이 받은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고등교육도 개신교를 비롯한 신흥종교에서 많이 담당했다는 것과 크게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표 33인 가운데 포천출신의 종교인이 있다. 당시에 감리교인 이었던 박동완이 바로 그런 인물로 그는 3.1 만세 운동 후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당하고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그는 그 후에도 일본인과는 같은 시간을 쓰지 않겠다면서 시계를 30분 늦게 가도록 맞추고 살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일본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포천시

그리고 대척점에 있는 또 한사람의 포천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있다. 8.15광복 후, 포천감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던 정춘수가 바로 그이다. 대척점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는 바로 가장 대표적인 민족지도자 중의 변절자이기 때문이다.

비록 독립선언문에 이름을 올렸고, 1년 6개월이라는 옥고까지 치룬 사람이지만 결국 변절자가 되어 신사참배에 앞장서고 일본의 전쟁을 미화하며 후일에는 일본을 위한 조찬기도회와 심지어는 일본군을 위한 특별기도, 애국 헌금과 무기 제조를 위한 철문과 교회종의 헌납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박동완은 신간회의 간사를 맡아 활동했고, 《기독신보》 주필, 《신생명》 주간으로 언론 사업에 주로 종사하다가 1927년 1월 이상재, 안재홍과 함께 신간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본부 상임 간사를 맡았다. 1927년 12월 9일 중국 동삼성에서 거주하는 한인이 중국 관헌으로부터 귀화를 강요받고 박해를 받자 재만동포옹호동맹을 결성에 참여하고, 중앙상무집행위원에 임명되기도 했다. 1928년 중반 하와이로 파견되어 현지의 오아후 섬에서 목사로 12년간 재직하면서 《한인기독교보》를 창간하는 등 목회 활동을 하면서 교회 부설 한글학교를 확장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까지 가르쳤으나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1년 2월에 먼 타국에서 그만 숨지고 말았다. 현재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변절자로 낙인찍힌 정춘수는 1949년에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두 달간 구금되기도 했고, 감리교회 내에서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거센 비판이 계속되자, 정춘수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는 당시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협력하는 체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다가 1949년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파행을 보이는 등의 이상 행동을 보였는데, 한국 전쟁 발발 후 고향인 청원에 피난해 있다가 사망했다.

포천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두 사람의 민족지도자의 다른 행보를 보면서 마음에 남는 씁쓸함은 지울 수 없다. 물론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제3자가 완전히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행보는 자신이 만들어 간다는 면에서 본다면 비록 박동완 같은 훌륭한 지도자도 있었지만 정춘수 같은 변절자도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지금의 행동이나 인생의 족적이 후일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 생각하면서 살 일이다.

이와 같이 우리고장 포천에도 역사의 커다란 수레바퀴를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온 수많은 백성들과 그들의 지나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들이 많이 있다. 이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또 그 앎으로 앞날에 책임을 질 수 있는 후손들이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할 의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시민기자 이정식(wellth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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