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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장준하 선생을 만나다
지난 1975년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서

가을이 한창이다. 산은 온갖 단풍들로 색색 물들어져가더니 이제 그 잎조차도 하나 둘씩 떨어져가고 있다. 그것은 포천 백운산의 약사계곡도 마찬가지다.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위치하고 있는 약사계곡은 어느새 가을준비를 마친 듯 모든 단풍이 산기슭을 아름답게 메우고 있었다.

약사계곡에 유명한 관광지는 없다. 하지만 볼 것은 많다. 산이 있고 물이 있다. 단풍에 빨갛게 물든 산의 모습도 절경이다. 그 아래로 푸른 물이 흐르는 것도 절경이다. 단풍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밟으며 옆에 흘러가는 물소리를 듣노라면 어느새 무아지경의 경지에 올라선 것만 같다. 낙엽과 함께 신선이 된다.

-약사계곡


오늘 약사계곡엔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빗방울이 수없이 쏟아지는데도 산을 타던 사람들의 얼굴엔 약간의 비장감마저 돌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가칭 '풀뿌리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포천 시민연대(이하 포천 시민연대)'의 회원들이었다. 고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곳을 찾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고 장준하 선생은 지난 1918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광복군 소위를 지낸 후 김구의 비서로 임정의 요인들과 우리나라에 귀국했다. 이후 그는 꾸준한 활동을 펼쳤고 막사이사이상 언론 문학부문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973년 유신정권에 반대하며 개헌청원을 주도하다가 긴급조치 1호 위반혐위로 구속됐고 이어 1975년 8월 17일 당시 포천군 이동면 약사골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후 고 장준하 선생의 묘는 파주의 천주교 묘지에 안장됐으나 지난해 폭우로 묘지의 뒤편 석축이 붕괴되며 이장이 추진돼 결국 올해 8월 1일 이장됐다. 그러나 그의 유골 사진이 공개되며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현장인 약사계곡을 다녀갔다. 지난 8월부터 석 달간 1,000여 명이 다녀갔다고 하니 그 이슈를 짐작케하고 있다.

오늘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현장을 찾았던 이들은 다양각색의 포천 시민들이었다. '청년 장준하와 함께 떠나는 약사계곡 현대사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기행엔 통합진보당, 포천 청년회, 공무원노조 포천시 지구, 전교조 포천지회, 포천 나눔의 집, 포천시연천군 지역위원회, 포천시 경제민주화 운동본부 등의 기관에서 참석했으며 이외에도 이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들도 참석했다.




-기행을 하는 가칭 '포천 시민연대' 회원들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이들의 마음이 무거워진 탓일까. 한 두 방울씩 내리던 빗방울이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백운산 약사계곡의 둘레길 흙도 빗물에 적셔져 매우 미끄러웠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산을 탔다. 같이 따라온 어린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혹은 아빠의 손을 잡고 군소리하지 않으며 묵묵히 산에 오른다.




-백운산의 약사계곡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40여 분간 걷자 마침내 고 장준하 선생이 숨진 현장에 도착했다. 그 곳엔 이미 수많은 조문객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국화송이와 조화가 놓여 있었다. 가칭 '포천 시민연대'의 회원들은 우선 고 장준하 선생에 대한 예의 표시로 묵념을 했다. 빗물이 너무 거세 술이라도 한 잔 따를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빗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모두들의 마음은 단 하나였다.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현장에서 묵념하는 이들.


고 장준하 선생을 만난 후 산을 내려오는데도 이들의 발걸음은 매우 무거워보였다. 본 기행에 참가했던 포천시 경제운동본부 김인호 소장은 "산을 내려오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마음의 짐이 오히려 무거워진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그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현장을 보며 나태해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며 "앞으로 많은 이들과 함께 노력해 의문을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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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포천 청년회 이명원 회장은 "여럿이 함께 모여 연대해 단결이 이뤄졌으면 한다."며 "이번 기행을 통해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의혹을 갖고 모두 의문을 풀어보자"며 다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아직은 미정이지만 앞으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현장 기행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 있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명원 회장은 "포천에 숨어있는 여러 진보적인 민주 시민들이 포천 지역에서 기지개를 펼 수 있도록 우리 (가칭) 포천 시민 연대에서 도울 것"이라며 본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쳤다.



 

이번 기행은 기행에 참가한 이들에게 많은 것을 되돌아볼 기회가 된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들이 여기에서 만족하진 않겠지만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이들은 이제 겨우 단 한 번 시도하였을 뿐이지만 어느새 출발점에서 반 이상 도착했다. 이들, 가칭 포천 시민연대가 앞으로도 장족의 발전을 할 수 있길 기원한다.

시민기자 박재성 (khanselle@daej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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