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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가치가 있는 농촌을 만들다!
교동장독대마을 이수인 대표를 만나다.
2021-11-29 조회수 : 2345

시민기자 서상경

 

포천시 관인면 중리는 본래 강원도 철원 땅이었다. 1895년에는 연천군에 편입되었다가 지금은 포천시에 속해 있다. 동쪽에는 한탄강이 흐르며 나머지는 지장산 줄기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상당히 고립된 마을임에도 인구는 많았다. 중리에서도 교동마을은 도룡농이 많이 살아 유래된 이름이다. 한탄강 지역이 수몰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원래의 자리에서 현재의 산기슭으로 옮겨왔는데 마을 이름도 장독대 마을로 바꾸었다.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빌던 어머니의 마음과 물의 동네라는 이미지를 합쳐 주민들이 고안해낸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체험마을로 지정된 곳, 교동장독대마을 이수인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동장독대마을 표석ⓒ시민기자 서상경

▲장독ⓒ시민기자 서상경

오래전 중리에는 광산이 있었다. 소석회를 생산하던 곳이다. 그 바람에 인구도 많았다. 광산의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술을 좋아하는 것이었고, 도박까지 널리 퍼졌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활은 내일이라는 것이 없었다. 가난으로 치면 아마도 전국에서 1등이었을 거다. 아이들은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빈곤이 극에 달했던 마을이다.

이런 상황에 교동마을에서 태어나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랐고, 농촌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수인 대표. 수원의 농업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의 발상을 전해준 은사의 영향을 받아 대학을 포기하고 농촌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설득하여 땅 300평을 얻었고 봉선화를 심었다. 가을에는 서울에 가지고 가서 팔아 수익을 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고 마을의 변화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그것이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곶감ⓒ시민기자 서상경

뜻이 맞는 젊은 사람들과 힘을 합쳤다. 그러나 부딪히는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1994년에 우연히 신문에서 농촌주거환경 개선사업 프로젝트 공모사업을 보게 되었다. 지원을 해 보자 의기투합했다. 마을의 젊은 사람 몇몇이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발표를 하러 갔는데 손으로 쓴 것이라 내밀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발표하면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 마을은 전국에서 1등 하는 것이 많다. 술 많이 마시는 거, 도박 잘하는 거, 못 사는 걸로 1등이다. 하지만 주거환경개선을 통해서 부모님과 마을 주민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 지원을 했다.”

그리곤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1주일 후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남들은 2~3년이 걸리는 농촌 개선을 1년 만에 끝냈다. 체험행사도 시작했다. 못자리 체험, 도시민이 접해보지 못하는 농촌의 일거리를 체험으로 접목했다. 그러자 정부와 매스컴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신문에는 “예술적 가치가 있는 농촌으로”라는 제목의 글이 보도되었고, 듣고 먹고 삼박자 농업을 통한 농촌과 농업의 변화를 추구하였다.

▲곶감 건조ⓒ시민기자 서상경

1999년 농협에서 팜스테이 공개모집을 했다. 공모사업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었기에 준비를 했고 교동 마을이 선정되었다. 그것은 전국에서 최초로 팜스테이 체험마을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공식적으로 참여한 손님이 외국인이었다. 주거환경이 개선된 마을에서 외국인이 머물렀는데 한국적 분위기를 매우 좋아했다. 감자전을 만들어 주면서 먹으라고 했더니 음식 이름을 물었다. 얼떨결에 ‘코리안 피자’라고 했는데 히트작이 되었다. 그러한 체험행사는 매스컴에 보도가 되고 교동마을은 전국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모든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공모사업을 따 놓고 돈이 내려와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주민들에 대한 교육을 시작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의 소질과 취미에 맞는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고 오늘날 어떤 분은 자격증 10개를 가진 사람이 있을 정도다. 국민교육헌장에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런 준비과정에서 2010년 녹색농촌체험마을 공모사업에 도전하였다. 마을 주민들의 자격증을 전부 서류에 첨부하여 제출했고 역량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렇게 하여 다시 장독대 마을이 선정되었고 겨울에는 장 담그기 체험, 봄에는 오디 체험을 진행하며 역량을 키워나갔다.

가을에는 할 만한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발상의 전환 곶감이었다. 강원도 인제 산골에서 황태가 마르고 추풍령에서 오징어를 말리는 것을 보고 우리의 환경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 결과였다. 겨울의 추위로 기온 변화가 큰 점을 활용해서 남녘의 감을 가지고 와서 곶감을 말려 판매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토리텔링도 만들었다. “남쪽의 감 아가씨가 장독대마을에 시집와서 곶감 댁이 되었습니다.” 너무 길다. 그래서 주민들이 다시 모여 머리를 맞댄 끝에 ‘시집온 곶감’이라는 단순 명료한 이름을 만들었다. 감나무 한 그루 없는 마을에서 시집온 곶감은 유명 브랜드가 되었다.

▲시집온 곶감ⓒ시민기자 서상경

▲봄에는 오디ⓒ시민기자 서상경

▲교동장독대마을 이수인 대표ⓒ시민기자 서상경

30년 인생을 교동장독대마을을 위해서 헌신해온 이수인 대표는 청산유수다. 말씀도 너무 잘 한다. 마을의 변천과 이야기를 듣다 보니 30분 예정된 인터뷰를 훨씬 넘겼다. 그러면서 이수인 대표는 부탁의 말을 남겼다.

“각 마을마다 주어진 환경을 생각하여 준비를 철저히 하면 마을공동체에서 지속적인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공동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우리 지자체에서 지역의 특성에 맞도록 지원해 주는 교육센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사업일수록 멘토링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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