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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은 내게 '희망의 땅'
2015-08-03 조회수 : 5682

김세준(영북면, 카센터 운영)

충남 천안의 한 철공소에서 대문 용접을 하다가, 경기도 안산에서 금형도 해 봤다가, 다시 용인에서 타이어 재생공장에서 일하다가, 15년 전에 이곳 포천으로 와서 결혼도 하고 지금까지 자동차 정비를 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누가 봐도 너무나 평범한 내 직업이고 경력이다. 아니, 사실 조금 잘 배우고 잘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기름밥이나 먹는 하잘 것 없는 이력으로 보일 곳이다. 맞다. 나는 기름밥 먹는 별거 아닌 인생이었다. 하지만 포천으로 이사 와서 사는 지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포천시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했고 고등학교 때 휴학도 한번 한 뒤 졸업도 간신히 했다가 지금은 이 자동차 정비가 밥벌이가 되었는데 그 과정은 실로 우연이었다. 포천으로 이사 온 직후(그때는 결혼을 하지 않은 노총각이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 한명이 포천으로 왔으니 신고식 겸 우리 집에 가서 술 한 잔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나이에 월세방 살고 있는 내 처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 직원의 방문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쓸쓸히 소주를 마셨다. 누구를 초대하기 싫은 월세방의 내 신세가 너무나 초라해서 죽고 싶을 만큼 속상하고 서글펐다. 소주를 몇 병이나 마신 뒤 쓰러졌다. 그리고 한참 만에 깨어났다. 허망함에 한동안 앉아 있다가 평소 고향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형 같은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선배 형도 가까이 포천에서 살고 있었다.

“형, 저 지금 너무 초라해요. 죽고 싶어요.”
“비~잉신 같은 눔. 웃어, 이 등신아~! 원래 힘든 때일수록 정말 웃긴 거야! 확 웃어제껴. 그렇게 미친놈처럼 실컷 웃고 나면 세상이 다시 보일수도 있는 거야”

선배 형님 말대로 한참을 웃고 나니 마음이 좀 안정이 되었다. 그랬더니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창피함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잘 살고 싶은 욕심이 불끈 솟아올랐다. 선배 형은 적당히 취한 내게 용접과 금형 같은걸 해본 솜씨면 기계도 꽤 잘 만질 수 있을 거라며 자기 밑으로 들어와 자동차 수리를 배워보라고 권했다.
그 길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 정말 선배 형한테 배워보니 자동차 수리는 식은 죽 먹기였다. 내가 천부적으로 기계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동안 모르고 있던 그 적성을 그제서 찾은 느낌이었다. 나를 데리고 일하던 선배 형의 카센터에는 싸고 빨리 제대로 수리해준다는 소문이 붙어 많은 손님들이 들이닥쳤고 덕분에 돈도 꽤 벌었다. 그 덕분에 나는 포천에서 장가도 들고 지금의 아내와 아이들을 키우며 작지만 알찬 카센터도 꾸려나가며 살고 있다.
ⓒ포천시

내가 수리해준 자동차를 잘 타는 수많은 분들. 그분들은 차를 폐차할 때까지 내가 고쳐 준 차를 타고 여행도 다니며 즐거운 여가 생활을 할 거 아닌가. 더군다나 그동안 다른 곳에서 그렇게 생활이 잘 안 풀리곤 했지만 포천으로 오자마자 이렇게 잘 살게 됐으니 포천은 내게 기회의 땅이고 생명의 은인이다.

아 참, 그리고 내가 카센터를 차렸을 당시 제일먼저 초대한 사람은 나 혼자 사는 자취방에 한번 놀러오겠다고 했던 그 직원이었다. 그를 집으로 불러 소주 한잔 했다. 직원은 첫마디가 “야! 너 이젠 여자만 들어오면 되겠네”라며 내가 창피하게 느꼈던 작은 월세방을 커다란 신혼 전셋집처럼 부풀려서 말해주었다.

세상에 이미 정해진 불행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손장갑을 끼고 몽키 스패너를 들고 자동차 바퀴를 조이며 일을 한다. 포천은 내게 희망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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