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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 시를 만나다.
2010-11-01 조회수 : 5990

 

ⓒ포천시
아침부터 애를 깨우는 소리에 짜증이 났다.
늦잠의 달콤함에 취해 이불 속에서 뭉기적 거리다 애 엄마 목소리가 사기그릇 긁히듯 했다.
순간 성질이 돋아 애들 방으로 가서 한바탕 불호령을 질렀다.
하기사 나 자랄 때도 아침잠이 얼마나 꿀맛 이었던가 예나 지금이나 꿀은 똑같이 달지 않겠나.
애한테 조금 미안 했다.
한편으론 요즘 사춘기 온 것 같은데 상처 입지는 않았을까.
이래저래 사나운 아침 이었다.

오늘은 시 낭송이 있는 날이다.
느즈막히 도서관으로 갔다. 세미나실에 들어서니 “가을밤 詩를 만나다”라고 플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가을 내음이 물신 풍겼다. 문우님 들은 파티나 축제에 온 듯이 화사하면서도 절제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내 모습을 봤다. 풀죽은 맘으로 몇 번 연습을 하니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때마침 애가 도착 했다. “너 잘 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진지하게 해야 돼...”
괜히 안 해도 되는 말까지 덧붙이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윽고 여는 시가 불씨를 당겼다.
우리는 점 점 고조 되는 기타 연주에 맞춰 시 낭송을 하니 가을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앞 다퉈 내기 시작 했다.
마치 오래된 연인과 사랑 실랑이를 하는 듯이 시의 주술에 걸려들었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맨 마지막 순서인 아들 녀석 차례가 되었다.
애는 천천히 무대 위를 올라갔다.
수줍은 얼굴에 모기만한 목소리로

“저기요 저도 한마디 하고 싶은 데요”

너무 순간적이고 갑작스러운 일이라  다들 애 입만 쳐다봤다.

“사실 아버지한테 효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생일 날 양말 한 번 사준 것 밖에, 이번에 효도 한 번 하고 싶어요."

장내는 일순 정적이 흐르고 난 뒷머리를 세게 한방 맞았다.
이 녀석이 날 이렇게 깊게 생각 할 줄이야. 애가 시 낭송 할 동안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건 감동 이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 내렸다.
오늘밤 시를 만나 읊은 것이 아니었다. 사랑을 만난 것 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느낀 것 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시를 낭송 한 게 아니라 사랑을 노래 한 것이다.
이 위대한 언어를 마음으로 읊은 것이다.

가을밤에 詩를 만났다.  
가을밤에 사랑을 만났다.
가을밤에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오늘 밤은 평생 못 잊을 아름다운 밤 이었다.  

김기수(일동면 기산6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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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된 의견글 2
  • 권민정 2010-11-14 삭제
    삼촌 정말 대단한데~ 요거는 수훈이 이야기인가?^ ^ 우리 삼촌 정말 자랑스럽고 우리 수훈이도 너무 예쁘다! 보고싶어ㅜ
  • 정광심 2010-11-04 삭제
    따스한내용 아침이 훈훈하네요^^정말 아름다운 시를 가슴 벅차게 만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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