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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할아버지
2011-07-05 조회수 : 11042

(류용규, 신북면)

지난 3월말, 절기는 봄이었지만 여전히 추울 때였다. 직장 직원 모임에서 평소 찾아뵙던 한 독거 할아버지 댁에 갔더니 방이 얼음장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부엌 쪽에 가 봤더니 연탄불이 피워져 있지 않았고, 전기히터도 켜놓지 않았다. 감기라도 드시면 어쩌냐고 여쭙자 할아버지는 “연탄 아낄라고 잘 안 피워. 히터는 전기세 아까워서 못 틀어. 그러다가 그거(전기세) 밀리면 그나마 전기도 끊어버릴지 몰라 아예 그냥 살아”라고 말씀하셨다. 코끝이 찡해졌다.

일흔을 넘기신 할아버지가 독거노인이 된지는 3년 전이라고 했다. 처음 찾아간 작년 초겨울, 다리를 약간 절으시는 장애가 있으셨는데 방 한 칸 월세방에 연탄보일러를 쓰고 계셨는데 정말 할아버지는 힘겹게 한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맞이하고서도 한동안 말을 꺼내지 않으셨다. 이웃주민을 찾아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아들내외 가족이 어느 날 그 노부(老父)를 남겨두고 한밤중에 떠났다는 것이었다.

ⓒ포천시

아들내외는 장애까지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 형편이 못된다며 나간 것이고,  할아버지는 보조금으로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동네에서 할아버지께 쌀과 반찬을 갖다 드리고 식량과 밑반찬을 해드리곤 했지만 그래도 얼마나 어려우실까. 사회복지사가 할아버지를 찾아 거동을 살피고 건강상태도 체크하지만 한파에 칠순노인이 겨울을 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 해보였다. 시간이 흘렀으나 끝내 아들의 소식은 없고, 그 아들의 괘씸한 행동에 모두들 포기한 채 지내고 있었다.

부모를 버리고 떠난 비정한 자식. 할아버지는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식사를 제대로 못한 탓인지 얼굴은 더욱 수척해졌고 거동은 아주 불편해 보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차마 아들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아들내외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일흔셋 연세에 인생의 가파른 언덕을 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얼마 전부터는 그래도 양로원에 나가시면서 친구도 사귀고 이웃주민들과 대화도 나눈다고 하셨다. 양로원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또래 분들이 계시니까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고 하신다. 자원봉사를 3년 정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점점 메말라가는 사회, 놀랍게 변해가는 가정의 풍속도. 그리고 점점 더 깊어 가는 노령사회.

할아버지 이마에 깊게 드리워진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검게 보이던 그늘이 우리사회에 더 커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지막까지 절대로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가족애’아닐까. 더구나 자신을 낳아 길러준 부모인데…….

오늘도, 할아버지의 건강을 빌며 아들 부부가 찾아와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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