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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우산
2011-09-05 조회수 : 5961

소흘읍 강석훈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창 밖에 속절없는 빗줄기가 쏟아져 내릴때면 내 눈은 약속이나 한것처럼 주방쪽의 뒷 베란다로 향한다.

 세탁기가 놓여져 있는 후미진 그곳엔 녹슨 우산 몇개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잡동사니와 뒤엉켜 쓰러져 있다. 몇해 전 장마철을 앞두고 시골에 계신 아버지가 가져온 우산들이다. 손자 녀석들이 까마귀 고기를 구워 먹었는지 비 올 때마다 우산을 하나씩 잃어버린다는 말을 기억하셨던 게다.

 하지만 아버지의 우산은 손자들에게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한 채 어느 날 베란다로 쫓겨났다. 누르면 펴지고 또 누르면 접히기까지 하는 첨단 우산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아버님이 시골동네 구멍가게에서 사 오신 것은 색깔도 우중충한 데다 수동이었으니 친구들 보기에도 창피했을 것이다.

 어쩌면 행여 손주들이 우산 없이 비를 맞을까 싶어 부지런히 새 우산을 사다 나르신 탓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달력이 초여름을 알리던 재작년 5월말 무렵 아버지는 정성스레 손질한 우산을 다시 몇개 더 들고 오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주사랑도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그해 8월초, 아주 먼길로 여행을 떠나시고야 말았다.


ⓒ포천시

 허무했다. 인생이 무엇일까.

 언젠가 생신때 내려간 아들 손을 붙잡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눈 한번 감았다 떴더니 한 인생 다 간 것 같어야. 재미난게 웂어....  너는 건강허고 행복허게 살어야 헌다. 늬 애덜 잘 키워야 혀. 알겄지? ”

 주름진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한 아버지가 중년이 된 이 아들의 손을 잡고 하신 말씀에,  난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께 한껏 가깝게 다가오고 있는 하늘의 부름....’

 그래서 장맛비가 쏟아지는 여름날이면 아버님 가신 그날이 생각나 먹구름 낀 하늘 만큼 내 마음도 아프고 서러운 멍울이 진다.

 극진히도 자식들을 사랑하셨던 내 아버지, 연필 곱게 깎아 가지런히 필통에 넣어주시고 소풍이나 운동회 땐 먼저 앞장서 함께 가주신 아버지.

 비오는 날, 내 마음속에선 당신을 보내드릴수가 없어 책상 앞에 모셔둔 영정 사진을 쓰다듬으며 얼굴을 대 본다. 돌아오는 주말엔 아이들과 함께 베란다의 우산을 정리하면서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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