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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유격대를 연극으로 만났다.
2025-06-30 조회수 : 481

시민기자 박광복

6•25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비극을 남긴 가장 비참하고 처절한 사건이다.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결과로 부모와 형제가 학살당하고, 산하는 피로 물들었다. 이념의 차이로 남과 북이 갈라진 민족 내전이었다. 현재도 이념의 갈등은 치료되지 않았다. 
그래서 잔혹한 싸움을 초래했다. 남과북은 서로의 가슴을 총칼로 겨누며, 너무나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이 전쟁은 단순한 물리적인 피해를 넘어, 민족 내부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연극의 서막이 열렸다.

©시민기자 박광복
'전쟁 75주년이 즈음하여'로 시작됐다. 포천의 63명의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했던 '유격대'의 이야기를 그린 공연은, 그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연극으로 포천시민에게 알리는 공연이다. 2025년 6월25일에 포천 반월 아트홀 소극장에서 있었다.
실시간으로 관객 앞에서 공연되기때문에, 배우들의 즉흥적인 반응과 생동감 있는 연기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었다.
모두가 먼저 피난을 가려고 아우성칠 때 대원들은 애국충절의 마음으로 전장에 남아 향토방위와 공산군 토벌 작전에 임했다.
그들은 '독수리 유격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연극배우들은 그날의 기억을 대사와 음악으로 전했다.
차상길 대원은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 부대의 허락을 받고 집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총을 안고 잠들어 첫닭이 울기 직전 부대로 돌아왔다. 짧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어머니와의 만남에 관객 모두가 ‘아~’ 하는 슬픔을 삼켰다. 어머니를 그리워한 유격대원의 하룻밤 꿈은 그렇게 덧없이 끝나고 말았다.

연극은 중반으로 접어 들었다.

군번도 없이, 어린 나이에 끌려온 대원들이 탈영병으로 오인돼 총살당한 장면에서는 울분이 올라왔다. 그 얼마나 억울한 죽음인가. 그것도 모자라, 한겨울 추위 속에 옷까지 벗겨져 적진으로 내몰렸다. 아군의 정보 부족이 빚어낸, 믿기 힘든 비극이었다.

©시민기자 박광복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흐느꼈다. 배우들의 직접적인 연기와 눈빛, 목소리 톤 등을 통해 관객은 배우들의 감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독수리 유격대는 내 나라를 지키고 고향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의성, 청송, 안동, 예천, 제천, 단양 토벌작전과가평·청평 수력발전소 도하작전, 강원도 화천 사내면 사창리 전투 등에 참가했다. 그 결과 9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투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죽음의 순간을 노래로 엮어 안타까움을 전했다. 관객들은 박수로 가슴을 치는 통곡으로 호응했다.

유격대간부 5명의 억울한 시신은 휴전 후 최종철의 큰 아들에 의해 수습되어 전적지 위쪽에 안치되었다. 시신이 수습되는 순간은 코끝이 찡해서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물이 흘렀다.
지금은 유족 후손들과 생존자 그리고 후원회장 윤춘근님의 증언과 기록으로 63인의 유격대원들은 편히 영면에 들었다.

호국성
“부르지도 않았는데 조국 앞에 모이고 뭉쳐, 이 겨레 이 강토를 지켜낸 장한 임들이여.
해와 달이 되어 이 나라를 살피시고, 산천초목 되어 이 강토를 감싸소서.”

이 공연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고통스러웠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 그 자체였다.

유격대원의 후손은 물론, 윤춘근 회장은 "이분들은 포천의 보배이며, 국가적으로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포천시는 전적지 주변을 공원화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향후 안보교육관이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민기자 박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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