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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맛있는 잣 이야기
2017-01-25 조회수 : 4898

사람들은 잣의 고장으로 가평을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기억에 포천도 잣이 지천인 곳이다. 어릴 적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했다. 잣나무도 많았을 뿐더러 사람들이 잣을 선물로 주고받고, 잣으로 만든 과자까지 포천 시내에 많이 돌아다녔다. 잣의 가격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현실 경제의 차가운 체감온도가 어쩌면 포천에서 잣을 예전처럼 흔히 볼 수 없게 만든 장본인인지도 모르겠다.

아는 동생네 집이 포천 신북면의 갈월리에서 잣 농사를 크게 한다는 말을 듣고 가능하다면 껍질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피잣이라도 좀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 부탁을 했다. 신북면은 잣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잣을 구해 어릴 적 겨울이면 방안에 모여 앉아 벤치며 망치며 동원하여 까먹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내겐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하얀 모습의 잣보다 아직은 감출 것이 많아 보이는 피잣이 더 친숙하게 느껴져 그편이 훨씬 더 좋았다.

자루에 한가득 담긴 피잣을 만나니 그 감회가 여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릴 때도 이런 잣의 모습이 늘 신기했다. 마치 치즈나 버터를 만들듯 기름이 가득한 식물성 먹을거리가 어찌 나무에 그대로 달려 있는지 너무나 신비로웠다. 조물주의 위대한 손길을 담은 것 같은 잣의 모습은 까고 또 까서 만나는 각고의 노력과 인고의 세월이 만들어 내는 예술작품 같은 완벽함이 서려 있다.

넉넉한 동생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잣자루를 들고 개선장군처럼 집에 들어가 마눌에게 이제 한동안은 잣을 실컷 먹을 수 있다며 호기 좋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과연 이 많은 피잣을 어떻게 까먹을 것인가?

처음엔 그저 펜치로 어떻게 해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씻지도 않고 데이트에 나가려는 발칙한 행동이었다. 절대 이 작은 친구는 호락호락하게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다. 몇 날을 손에 못이 박힐 지경으로 이리저리 펜치로 궁리했지만 우리의 완패였다. 안 되겠다 싶어 인터넷에서 잣까기 가위를 따로 구입했다.



드디어 우리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까는 일보다 먹는 일이 더 빨랐던 우리가 이젠 먹고 남아 저장할 만큼 잣을 까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도 자꾸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얼마만큼의 힘으로 어디를 깨야 손쉽게 잣을 얻을 수 있는지 조금씩 그 해답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제법 그릇에 담아 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잣의 맛이란 참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좀 전에 이야기 한 대로 어찌 이런 모양의 이런 맛의 열매가 그 험한 산턱에 풍상을 겪으며 달려 있을 수 있는지 신비할 따름이다. 잣을 채취하기 위해 농부는 또 얼마나 노력과 희생을 겪어야 하는가? 하늘만큼 솟아오른 잣나무에서 따서 부숴서 다시 깨야 얻을 수 있는 눈물만 한 이 열매는 오늘 내 손에 들려 이렇게 고마워하는 내게 다소곳하게 민낯을 보이고 있다.

 

잣이 몸에 좋다는 것은 다들 아는 이야기이다. 예전 어르신들은 다방에 앉아 쌍화차나 생강차를 마실 때 꼭 잣을 몇 알 찻잔에 띄워 드시곤 했다. 마치 잣이 작은 호수 위에 떠다니는 보트처럼 찻잔 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입으로 호호 불어 한쪽에 몰아넣고 한 번에 입 안으로 넣을 궁리를 하곤 했다. 이젠 겨울이 예전처럼 무섭게 춥고 인정머리 없이 냉정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구나 움츠러드는 계절임이 틀림없다. 그 움츠린 겨울을 끼고 방안에 앉아 예전처럼 정겹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마치 산골의 외딴집에서처럼 그렇게 잣을 까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눈 미소를 나누고 있다. 맛난 잣을 입 안에 넣으며 말이다.

시민기자 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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