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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하면 무봉리 토종순대국!
2022-02-04 조회수 : 2883

시민기자 서상경

 

국밥은 국에다 밥을 만 음식으로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 우리 민족에겐 최고의 음식이었다. 이를 장국밥 또는 탕반으로도 불렀는데 깍두기 하나만 있어도 한 끼를 해결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이것은 지역의 대표 맛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니 밀양 돼지국밥, 안성 소머리국밥, 서울 설렁탕, 나주 곰탕, 대구 따로국밥, 전주 콩나물국밥 등으로 정착되었다. 포천에도 이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무봉리 토종순대국이 있다. 전국 어디를 가든 노란색 바탕의 순대국 간판을 만날 수 있으니 김종복, 이희자 창업주 내외의 음식에 대한 정성이 무봉리 순대국이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 창업 무봉리 순대국ⓒ시민기자 서상경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 43번 국도변에 있는 무봉리 토종순대국 본점 앞에는 ‘무봉리 순대국 SINCE 1994’라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1994년 의정부 진로백화점 앞 15평 작은 점포에서 무봉리 순대국이 탄생했습니다. 그 당시 많이 먹던 순대국이라 함은 돼지부속과 머릿고기의 삶은 물로 밥을 말아주는 국밥이었습니다. 차별화된 순대국을 만들기 위해 돼지의 잡냄새를 없애고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에 사골로 육수를 만들고 밥과 국을 따로 내주는 지금의 무봉리 순대국이 탄생하였습니다.”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라며 짤막하게 기록을 했지만 사람들이 다시 찾는 맛을 얻기까지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다른 식당에서는 고기 삶은 물에 밥을 말아주었지만 사골육수를 푹 고아 첨가물 없는 육수를 만들었고 돼지의 잡냄새를 없앴다. 이희자(70) 대표는 어른들이 맛있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지만 어린 꼬마가 할머니와 식당 앞을 지나가며 “할머니, 이 집 순대국 끝내줘요.”라며 엄지를 치켜드는 그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막걸리를 곁들이는 순대국집의 특성상 지저분한 것이 보통이지만 식당의 실내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등 차별화를 단행했다. 그래서 손님들이 오래 기억하는 식당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맛앤멋 음식점ⓒ시민기자 서상경

포천-구리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해 등산을 다니던 시절, 무봉리 순대국은 아침을 든든하게 하는 단골집이었다. 새벽 5시에 지나가도 문은 열려 있었는데 주문한 지 5분도 안돼 펄펄 끓는 순대국이 나오면 새우젓, 청양고추, 들깨가루를 기호에 맞게 직접 간을 했다. 그리고 공깃밥 하나를 말고 김치를 곁들이면 듬뿍 들어있는 고기와 국물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지금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돼지사골을 14시간 끓여서 육수를 만들고 고기도 뽈살을 사용하는 등 음식을 표준화해서 전국의 가맹점에 공급을 하고 있어요.” 이희자 대표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주고 단골이 되는 이유를 말했다. 여성들 중에는 순대국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그래서 국물을 먼저 맛보고 주문하시라 했더니 90%는 주문을 하더라 했다. 돼지고기는 비계가 없으며 국물 맛은 담백했기 때문이다.

▲이희자 대표와 직원들ⓒ시민기자 서상경

성공 가도를 달려온 무봉리 토종순대국은 수익의 지역사회 환원에도 앞장서고 있는데 특히 장학사업을 꾸준하게 해 왔다. 그래서 “지역에서 기부라든가 장학사업 등 좋은 일도 많이 하신다면서요?”라고 질문했더니 옆에 있던 남유비 직원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거들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어요. 그때는 학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두 번 무봉리 장학금을 받은 거예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냈는데 무봉리 순대국이었어요. 그때는 사무실 이름으로 되어 있고 무봉리 순대국이라는 것을 몰랐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희자 대표가 깜짝 놀라 “정말이야?” 하며 웃었다. 오늘 처음 알았다고 했다. 자신이 장학금을 주었던 학생이 이곳으로 취직을 해서 2년 넘게 같이 일을 하고 있었으니 뿌듯하지 않을까. 요즘도 길을 가다 보면 인사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고 한다.

▲무봉리 순대국ⓒ시민기자 서상경

1997년 이곳에 자리를 잡고부터 어느덧 25년의 역사를 지니게 된 무봉리 토종순대국은 이희자 대표의 땀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식당으로 나왔고 몸이 아파서 병원 신세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수록 오뚝이처럼 다시 식당으로 나와 청소로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지금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있지만 청결함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국물의 맛은 변함없도록 감독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어려운 시기이다 보니 예전처럼 사회에 봉사를 많이 못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요즘은 더 열심히 기도한다고 한다. 계속 봉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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