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유재술
나무도 잎을 땅으로 떨구어 흙으로 돌아가는 가을이다. 흙에서 태어난 생명이 고향인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삼라만상의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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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라와 겨레를 위해 순국하신 면암 선생은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저 멀리 충남의 한 야산에 쓸쓸히 잠들어 계신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며 선생의 귀향을 애타게 소원하는 포천의 시민들이 ‘면암 선생의 귀향(歸鄕)’이라는 행사를 맞이했다.
올해로 네 번째 열리는 ‘제4회 면암문화제’가 면암 선생의 귀향과 ‘순국 117주년 추모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면암 최익현 선생 숭모사업회 주관으로 9월 초 ‘면암 최익현 선생배 풋살대회’, 10월 ‘면암 골든벨 퀴즈대회’, ‘면암 추모시 낭송회’, 11월 ‘면암 학술강연회’에 이어 11월 4일 본 행사를 마지막으로 성황리에 종료하며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본 행사는 오후 2시 포천시청에서 시작되었는데, 포천시청을 출발하여 강병원 사거리와 포천보건소 사거리를 거쳐 왕방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최종 포천중학교까지 도보로 행진하며 면암 선생의 귀향을 염원하는 행사였다.
행렬의 출발에 앞서 본 행사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포천실버농악단’의 신명나는 농악공연이 열려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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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현 포천시장과 최춘식 국회의원, 포천시의회 서과석 의장, 경기도의회 윤충식 의원, 포천시의회 연제창 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면암 선생의 귀향’이라는 행사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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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로 행진하는 퍼포먼스이므로 경찰과 모범택시 운전자협회 회원들이 행사에 참여하여 행렬을 선도하고 교통정리를 하는 등 행사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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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기의 만장을 앞세운 행렬의 중심에서 농악대가 꽹과리와 장구, 북과 징을 두드리며 연주하여 흥을 돋구었고, 시민들은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연신 박수를 치는 등 행사 참여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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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마당을 출발한 행렬은 농협중앙회 포천시지부와 포천농협 신읍지점 앞, 그리고 강병원 사거리를 돌아 포천보건소를 거쳐 왕방초등학교 앞을 지나 면암 선생의 아들이며 독립투사인 최면식 선생의 기념비 앞을 통과하여 포천중학교에 도착하여 행진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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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참여자들은 모두 사고없이 안전하게 도보행진을 끝낸 뒤 포천중학교 은행관에 모여 곧바로 면암 선생 ‘순국 117년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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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선생 숭모사업회 변건주 사무국장의 진행으로 추모식이 시작되었으며, 식전 행사로 해솔풍류악회의 국악공연이 열렸으며, 이어 본격적인 추모식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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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식에서 시인이자 숭모사업회 부위원장인 이천희 여사는 면암선생을 추모하는 시를 낭송하였는데 행사 참여자 모두 숙연한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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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숭모사업회의 박낙영 회장은 인사말에서, “면암이 추구했던 현실적 고뇌는 그 당시에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지부상소를 통해 전달되었지만 유배와 의병, 단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갈수 밖에 없는 처절한 투쟁이었다.” 라고 면암이 걸어간 길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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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현 시장은 추모사에서, “나라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애국정신을 일깨우고 민족의 단결을 호소했던 면암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때이다.”라며 면암 선생의 애국사상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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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식 국회의원은 이어진 추모사에서, “불의에 굽히지 않은 불굴의 정신이 면암의 정신이다. 친일하는 자들로 해서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고 친일파 처단을 요구했던 주장은 지금까지도 풀지 못한 문제이다. 이 역시 면암 선생의 정신이다.”라며 면암 선생의 정신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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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의회 서과석 의장은, “ 면암 최익현 선생은 조선 말기 유학자이자 항일운동가로 의병을 일으켜 국가의 자위권을 지키려 목숨을 걸고 싸운 애국의 표상”이라고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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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선생의 방계 후손인 최병훈 교수는, “옳지 못한 세상에 외면하거나 굴종하지 않으시고 죽음으로 결연히 맞섰던 할아버님의 결기와 용기는, 사람들이 말하는 춘추대의를 몸소 실행에 옮기셨던 진정한 선비이시다. 다른 말로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셨다.”라며 할아버님 면암 선생께 올리는 편지를 낭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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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선생의 5대손인 유족회 대표 최진욱 회장은 답사를 통해, “할아버님의 유해를 고향 포천으로 모셔 오는 일은 유족 개인의 힘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 숭모사업회가 노력하고 있지만 역시 힘에 부치는 일이다. 시민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 바란다.”라며 면암 선생의 귀향이 일시적 퍼포먼스로 끝날 일이 아니라 포천시민의 일이어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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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면암 선생께 술을 올리는 헌작(獻酌)과 국화꽃을 바치는 헌화의 순서가 이어졌고,



이어 행사 관계자 및 참석자의 기념 촬영을 끝으로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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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선생의 사상을 대표하는 말은 위정(衛正)과 척사(斥邪)이다. 의병을 일으켜 일본과 싸우다가 패하여 대마도에 강제로 끌려가시며 부산에서 버선에 조국의 흙 한 줌 채워 담고 물 한 병 가져가신 뒤, 왜놈들이 주는 것은 물 한 모금조차도 거부하시며 아사(餓死) 순국하실 때, 고향 땅에 묻어달라 하신 유언을 따름은 위정이요, 유해 봉환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뒤로 미룸은 척사일 것이다. 면암 선생의 유해가 충남 예산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