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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산 억새꽃이 피었습니다!
시민기자 변영숙


ⓒ시민기자 변영숙

포천시 인근 시에 거주하면서 명성산 억새 군락지를 아직도 보지 않았다면 이건 분명 게으르다는 의미다. 영남알프스, 민둥산, 오서산, 천관산과 더불어 전국 5대 억새 명소인 명성산 억새밭의 장관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해마다 수 십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데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 ‘산을 타지 못한다.’라는 말은 모두 핑계일 뿐이었다.

몇 년을 벼르다 올가을 드디어 명성산 억새를 두 눈에 담아 왔다. 백록담도 아니고 오름도 아니면서 마치 분화구처럼 가운데가 둥글게 팬 분지에 연약한 줄기의 억새들이 저들끼리 맨몸으로 부딪히며 뒤흔들리는 모습에 난 적지 않은 충격과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시민기자 변영숙

10월 한글날 연휴 마지막 날 명성산은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산정호수의 하동, 상동 주차장은 물론이고 임시 주차장까지 만차였다. 돌담병원 솔 숲과 도로변 곳곳이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시민들은 방역 당국의 지침에 앞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했다. 마스크는 하고 있었지만 분명 사람들의 얼굴에는 코로나 초기 시대의 극도의 두려움이나 거리낌은 분명 덜해 보였다.

ⓒ시민기자 변영숙 

산정호수의 산정랜드에서는 놀이 기구가 돌아가고 흥을 돋우는 노래가 큰 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이런 흥겨운 분위기가 얼마 만일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차는 주차장에 대지 못하고 1km 떨어진 자인사까지 떠밀려갔다. ‘그래 차라리 자인사에 차를 대고 그쪽의 등산로로 오르자.’ 내심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명성산 등산로에는 모두 4개 코스가 있다. 자인사에서 출발하는 코스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비선폭포-등룡폭포-억새 군락지-팔각정-정상코스와 비선폭포에서 갈라져 책바위를 지나 팔각정-정상으로 오르는 코스이다. 마지막으로 산안고개를 넘는 코스가 있다.

ⓒ시민기자 변영숙

자인사 코스는 조금 험하다고 들었다. 그래도 얼마나 험할까 하고 의기양양하게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마침 두 명의 등산객들이 앞서가는 것이 보였다. “이 길이 명성산 등산로 맞지요, 억새 군락지요?” “이쪽은 내려가는 길이에요. 올라가는 길은 저쪽이에요. 그런데 그쪽 길은 너무 험해요. 거의 90도로 깎아지르는 바위 코스예요.”라며 자인사가 머리에 이고 있는 암벽을 가리켰다. 조금 돌아가도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로 가라고 한다. (그들의 충고를 따른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지. 하마터면 억새 군락지도 못 가고 고생만 하다 집으로 돌아갈 뻔했다.) 자인사에서 ‘억새밭 가는 길’ 입구까지는 도로를 따라 800m 정도 걸어야 했다. 도로를 따라 명성산 억새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2021년 명성산 억새 축제

포천 명성산 억새 축제의 정식 명칭은 ‘억새꽃 나드리 축제’이다. 그러나 올해도 코로나로 인해 특별한 행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억새밭 가는 길은 식당가를 관통한다. 입구를 알리는 현수막이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명성산은 철원의 갈말읍과 포천시 영북면에 걸쳐 있는 해발 923m 산이다. 산 전체가 암벽과 암릉으로 덮여 있고 1925년 농업용수를 충당하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인 산정호수를 품고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속하며, 영남 알프스, 정선 민둥산, 오서산, 천관산과 더불어 5대 억새 명소로 꼽힌다.

명성산과 그 일대에는 곳곳에 궁예의 전설과 일화가 전한다. 명성산 이름과 관련해서는 2가지 설이 전한다. 왕건에게 패한 궁예가 통곡하지 산도 따라 울었다는 설과, 궁예를 따라 북으로 도주하지 못하고 명성산에 남은 궁예의 군사들과 일족들이 산이 떠나가도록 울었다는 설이다. 어찌 되었건 궁예와 궁예의 백성들을 애달파 하면서 산이 소리 내어 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명성산의 망봉은 궁예가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산정호수 좌우로 망원대를 올리고 봉화를 올린 곳이라고 하며, 상봉에는 왕건에게 쫓긴 궁예가 숨어 지내던 자연 동굴인 ‘궁예동굴’이 있다. 항서받골은 궁예가 왕건에게 투항 서한을 받았다는 곳이다.

ⓒ시민기자 변영숙

명성산 계곡으로 들어서니 크거나 작거나 깊거나 얕거나 계곡마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마치 궁예와 그를 따르는 일족들의 울음소리인 양 애달프게 들렸다. 그러면서도 계곡과 폭포 그리고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계류의 수량과 소의 모양새가 하도 다채롭고 아름다워 그렇잖아도 무거운 발걸음은 한없이 늘어졌다. 투명한 계곡물 위로 빨갛게 단풍이 들기 시작한 곳에서는 어김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시민기자 변영숙

명성산 계곡에서는 조금만 낙폭이 커도 폭포처럼 여겨졌는데 ‘등룡폭포’는 가히 압권이었다. 3미터는 족히 되는 바위 위에서 하얀 광목천처럼 희고 긴 물줄기가 땅 밑으로 곤두박질치듯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휘둥그레져질밖에. 기대가 없으면 기쁨도 큰 법인지 명성산 등룡폭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만난 등룡폭포의 멋짐 폭발은 상상 이상이었다. 폭포 아래서 고개를 빼고 바라보고 다시 다리 위에서 턱을 주억거리고 아득한 계곡 아래를 바라본다. ‘명성산 참 멋지네…’

ⓒ시민기자 변영숙

폭포를 지나면서부터는 무념무상 상태가 되었다. 명성산은 돌이 많은 산, 아니 아니 그냥 돌산이었다. 주 등산로에 누가 일부러 바위를 파쇄한 것처럼 잔돌도 많고 등받이 없는 의자만큼 큰 돌들이 적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선처럼 앞을 가로막기도 하였다. 사실 길은 그렇게 험하지 않다. 초등학생과 팔뚝만한 강아지도 힘들지 않게 오르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이니 말이다.

ⓒ시민기자 변영숙

얼마나 올랐을까. 듬성듬성 억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명성산 억새를 봤으니 하산해도 되겠다 싶었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아까워서 내려갈 수가 없다. 다시 다리를 끌다시피 마지막 고비를 오른다. 이번엔 진흙투성이 자갈밭이다. 참 고약했다. 해는 저물기 시작하는데 억새밭은 언제 나오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다행히 아직 나처럼 올라가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안심이 되었다. 간신히 마지막 깔딱 고개를 넘었다. 그다음은 ‘….’이다.

ⓒ시민기자 변영숙

하늘이 열린 듯 뻥 뚫린 분지에서 새하얀 억새들이 정처 없이 나부끼고 있다. 시선이 머무는 곳이 다 억새였다. 광대한 대지를 뒤덮은 억새들이 하얗게 부서지고 멀리 산봉우리들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봉우리들의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모두 다 내 나라 내 땅이라는 생각에, 그 땅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에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장쾌하게 펼쳐지는 산봉우리들이 더없이 감동적이었다. 거기에 억새풀까지 어우러지니 ‘장관’이랄 수밖에. 여기저기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벌써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감동은 마음속에 고요히 접어두고 뛰다시피 산을 내려왔다.

ⓒ시민기자 변영숙

억새의 개화 상태는 60~70% 정도이다. 10월 말이면 더 풍성한 억새 물결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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