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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떡과 자기 하기 나름
2022-06-16 조회수 : 2682

 

좋아하는 산과 석양을 보며 살겠노라고 지난해 늦가을에 포천 관인으로 이사했다.
지명처럼 인심이 넉넉한 3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이다.
옆집에 사는 분의 조언으로 맛있게 하는 떡집에서 떡을 맞출 수 있었다.
한 말에 포장 포함 십만 오천 원이었다.
그 댁은 소개해준 떡집에서 단골로 떡볶이 떡을 자주 해서 드신다고 했다.
조언만 해주신 것이 아니라 떡집에 전화로 찹쌀을 넣어 잘해달라는 부탁까지 해주셨다.
덕분인지 내가 먹어본 시루떡 중에서 가장 맛났다. 집집이 다니며 두 팩씩 드렸다.

떡을 돌리는 날은 아랫집 주민이 자동차에 동승해서 일일이 집을 안내해 주시거나,
댁에 계시는지 전화로 물어봐 주기도 했다.
도중에 마을 중간에 사는 세 집은 함께 팥칼국수를 드시러 가셨단다.
그곳은 어느 집, 어디에 갖다 놓을 테니 나중에 가져가라는 등의 연락을 취해주셨다.
어느 집은 며칠간 병원에 입원해 있단다.
그러니 가까이 사는 어느 집에 맡겨놓으면 된다고 해주셨다.
또 사과 농장을 하는 집은 농장이 아닌, 관광지에서 사과를 파는 곳에 있었는데, 그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덕분에 사과 몇 개를 답례로 얻어오기도 했다.

다행히 점심시간 때라서 대부분 직접 얼굴을 보며 인사를 드리며 떡을 건넬 수 있었다.
직접 얼굴을 뵙지 못한 집에는
직접 쓴 “아름다운 마을에서 함께 살게 되어 행복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아랫집 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떡을 돌릴 시간에 집에 사람이 없었을 경우는 다시 와야 했을 터이다.
무엇보다 같이 다니며 각 집의 가족 구성이나 연세 등을 얘기해 주신 덕분에
동네 사는 분들의 사정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감사의 마음으로 다른 집보다 떡을 하나 더 드리고 저녁에 모시고 식사를 했다.

요즘 시골 대부분 마을이 그렇듯이, 이곳도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많았다.
많게는 80대 후반, 젊어야 50대였다.
아이들 만나기는 어려웠다. 가끔 들르는 손자들이 있을 뿐이었다.
검정색 진돗개를 데리고 있던 분은 개에게 “아줌마, 냄새 맡아둬.”라고 했다.
그러면 나중에 나를 보고도 짖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이 있는 집으로 알고 있었는데 75세 어르신 혼자 사는 분은
“아들네가 왔다가, 사정이 있어 다시 갔어요”라고 하신다.
마당에 있던 자동차는 당신이 손수 운전한다고 한다.

답례로 고구마를 건네주신 마음은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네 정이다.
이사 떡을 받으시며 “잘 오셨어요.” “행복하게 잘 사세요.” 등의 인사말을 들었다.
무엇보다 “어디 가나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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