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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저수지 기행 ④ 명산 저수지

이성길 선생 묘역과 이한동 국무총리 생가를 통한 역사 이야기

시민기자 이화준
산골짜기에 바람이 불면 앞산이 운다는 명산(鳴山)이 있어 명산리일 줄로만 알았는데, 지명 유래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마을에 고성 이씨라는 효성 지극한 사람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좋은 명당자리에 아버지 묘를 쓰고 싶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새벽 문밖으로 나가 보니 한 도사가 마을 어귀에서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연유를 물어보니 그 자리가 묏자리로 좋다고 탄복하며 깃다리 쪽으로 가 버렸다. 이씨는 그곳이 하늘이 준 명당이라 생각해 땅을 파는 순간 산 전체가 울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울뫼라는 이름이 붙었고 한자로 명산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명산 저수지


▲명산 저수지ⓒ시민기자 이화준

명산 저수지(鳴山貯水池)는 홍수 예방과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60년에 착공하여, 1962년에 준공하였다. 총저수량은 4만 6,000t, 유효 저수량은 4만 2,000t이고, 사수량은 4,000t이다. 둑의 길이는 222m, 둑 높이는 3.5m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명산 저수지 인근에는 연꽃을 심어, 누구나 한번 꼭 가보고 싶은 마을 만들기에 노력하는 포천 울미연꽃마을이 있다. 2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지명 유래처럼 명당이 있는 곳으로 훌륭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창주사(滄洲祠)


▲창주사ⓒ시민기자 이화준

창주사는 이성길(李成吉, 1562~1621) 선생을 기리는 사당이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덕재(德哉), 호는 창주(滄洲). 아버지는 참봉 이정려(李精瓈)이다. 성품이 호방하여 세상에 구애됨이 없었다. 28세인 1589년(선조 22) 사마시에 장원하여 진사가 되고, 이어 증광 문과에 병과 15위로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도대장 이양원(李陽元)의 종사관이 되었다가 한양에서 철수하게 되자 아버지와 함께 관북(關北)으로 갔다. 경성에 이르러 당시 북평사 정문부(鄭文孚)가 의병을 일으키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경성과 회령 일대에서 반란군 국경인(鞠景仁) 등을 처단하고 왜적을 무찔렀다. 다시 명천과 길주에서 왜적을 공격하여 격파하였고, 12월에는 임명(臨溟)과 쌍포(雙浦)에서 싸워 대승하였다. 다음 해 종성으로 쳐들어온 여진족을 물리치고 단천에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를 철퇴 시켜 관북을 탈환하니, 이른바 ‘북관 대첩(北關大捷)’이 바로 이것이다. 이 전공으로 수성도 찰방에 제수되었다. 


▲이성길 묘역ⓒ시민기자 이화준

1594년(선조 27) 병조좌랑에 임명되었고, 1596년(선조 29) 북청 판관에 전임되었다가 함흥 판관이 되었다. 1597년(선조 30) 병으로 관직을 사임하였다. 다시 1601년(선조 34) 사복시 첨정, 여산 군수가 되었고, 1602년(선조 35) 형조정랑이 되어 암행어사로 함경도를 순회하였다. 1603년(선조 36) 왕명으로 문무관을 모아 놓고 친시(親試-활쏘기 시합)를 보았는데, 수석을 하여 말 한 필을 하사받았다. 그해 6월 양산 군수로 나아갔다. 이후 합천 군수와 덕원 부사를 거쳐 1607년(선조 40) 성균관 전적으로 중앙에 복귀하였다. 1609년(광해군 1) 호조정랑을 지냈고, 1611년(광해군 3) 판결사가 되었으며, 1613년(광해군 5) 동지사로 중국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이후 훈련 도정, 분조(分朝)의 병조참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 오다가 금교역에서 사망하였다. 묘소는 군내면 명산리에 있고, 신후재(申厚載)가 지은 묘지명이 남아있다.


▲무이구곡도ⓒ국립중앙박물관

그림에도 재능이 있어 임진왜란 당시 쌍포에서 싸워 대승한 것을 화폭에 그린 「쌍포 승첩도(雙浦勝捷圖)」가 전한다. 진중에서 그린 「무이 구곡 도권(武夷九曲圖券)」도 전하는데, ‘무이 구곡’이란 중국의 복건성과 강서성 경계에 높이 1300m 되는 무이산을 중심으로 우이산맥이 형성되어 곳곳에 명승지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아홉 구비가 뛰어나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성리학의 원조 송나라 주자(朱子)도 천하 절경인 이곳 계곡에 운곡 서원(雲谷書院)을 세우고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화가가 이 무이 구곡을 주요 소재로 다루었다. 이성길의 「무이 구곡 도권」은 필치가 정교하고 섬세하면서도 활력이 넘쳐서 선경(仙境)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 명작이다. <출처: 디지털 포천문화 대전>

이한동 국무총리 생가


▲국무총리 이한동 생가ⓒ시민기자 이화준

명산 아래 정치가이자 국무총리를 지낸 이한동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1934년 12월 5일 아버지 이정호와 어머니 채병숙 사이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7년 포천청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였다. 사법고시에 합격 후 법관에 임용되어 서울지검 부장검사 재직 중 정계에 입문하라는 권고를 받고 1981년 민주정의당 연천군-포천군-가평군 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6선 국회의원으로 자민련 수석부총재를 거쳐 2000년 5월 제33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2002년 하나로 국민연합을 창당하여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74,027표(0.3%)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낙선하였고, 2004년 정계 은퇴하였다. 이한동 국무총리 생가 옆으로는 풍수가들에게 명당으로 알려진 부친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이한동 국무총리의 부친 묘ⓒ시민기자 이화준

고성 이씨 집성촌에서 이성길 선생을 기리는 창주사와 국무총리를 배출한 명산리의 명당 그리고 명산리의 유래와 저수지까지 함께 둘러보았다. 따뜻한 여름이 오면 연꽃 가득한 울미연꽃마을을 다시 방문하리라 기약해본다.
*참조: 디지털 포천문화 대전

기사등록 : 2019-11-30 조회수 :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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