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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성지 순례지’를 가다
2023-04-07 조회수 : 1991

시민기자 김나경


ⓒ시민기자 김나경

포천에 천주교 성지 순례지가 있다고 해서 지인과 함께 순례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날 경찰서 옆에 순교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봤으나 찾지를 못했다. 둘째 날 다시 순교터를 찾아 경찰서 주위로 갔다. 경찰서 옆에는 애견 카페가 있었다. 그 카페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순교터가 있었는데 가슴이 "쿵" 하니 내려앉았다. ‘아! 너무 쓸쓸하다...여기가 순교터라니...’

ⓒ시민기자 김나경

우리나라 천주교회사를 보면 각 지역마다 대표되는 신앙 선조들이 있다. 포천지역에 신앙의 빛을 비춰준 홍교만(F.하비에르)과 홍인(레오) 부자(父子)다. (이하 홍교만, 홍인이라 칭함)

홍인은 한양에 살다 포천으로 이주해 성장했다. 당시는 조선 22대 왕인 정조가 과거제도 개선을 위해 대과는 규장각을 통해 정조가 직접 관장하여 많은 과폐를 없애고, 개혁에 뜻을 두어 통치하였다. 1794년 말 청국인 신부 주문모(야고보)가 우리나라에 들여오고 천주교도에 대한 정조의 관대한 정책은 교세 확대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홍인은 부친과 함께 주문모를 찾아가 세례 받고 신앙생활을 하며 선교를 하였다.

가부장적인 권위와 유교적 의례의식을 거부하는 천주교의 확대는, 유교사회 일반에 대한 도전이자 지배 체제에 중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정조가 죽고 세도정권기에 들어서면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1801년 순조가 왕위에 오르고 섭정을 하게 된 정순대비는 사교, 서교를 근절하라고 금압령을 내렸다.

ⓒ시민기자 김나경

신유박해가 일어나, 아버지 홍교만은 한양에서, 홍인은 44세에 포천 저잣거리에서 참수 당하게 되었다. 이 박해로 주문모를 비롯한, 정약용, 이승훈, 이가환 등 천주교의 진보적 사상가가 처형 또는 유배되었다. 홍인이 사형당한 저잣거리는 순교터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눈에 띄지 않아 성지순례지로서의 역할을 다 못한다는 애석함이 앞섰다.

ⓒ시민기자 김나경

관아터(감옥터)를 찾았으나 역시 첫날 나는 찾지 못하고 자매님을 만나 위치를 다시 물어 관아터를 찾아왔다. 군내면사무소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직진하면 반월산 둘레길이 있고, 좌측으로 감옥터가 있었다.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530번지 일대가 관아터라고 한다. 안내 표지판의 글을 읽어보면 ‘관아터는 조선시대 후기까지 유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1,635평으로 관아터에는동헌 객사, 그리고 복자 홍인이 고초를 겪었던 형방과 감옥이 있었다.’고 한국향토 문화 전자대전에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고, 안내 표지와 도면만 서있고, 표식을 하기 위해서 자루에 흙을 담아 둘레에 쌓아 놓고 있었다.

ⓒ시민기자 김나경

천주교 성당은 "관아터"라 표기하였고, 포천시는 "감옥터"라고 표기하였다. 같은 장소에 길 하나 건너인데 뜻은 같아도 명칭이 다른 것이 불편한 느낌이다.

ⓒ시민기자 김나경

구 성당은 1990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석조 건물이라 뼈대가 그대로 남아있어 2006년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해 문화재 제27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1955년 포천에 주둔하고 있던 6군 단장 이한림(가브리엘) 장군이 주도해지었다. 신앙심이 독실한 이 장군은 신앙 역사가 신유박해로 거슬러 올라가는 포천에 성당이 없는 것을 알고, 왕방산 기슭 언덕에 성당 터를 잡았다. 눈 여겨볼 것은 당시 포천 어디서든 확연히 눈에 띄었던 성당 위치다. 1960년대 사진을 보면 서쪽 언덕에 화강석으로 높이 쌓아 올린 성당은 중세 유럽의 성(城) 같다. 외벽에 건축물을 지탱하는 버트레스까지 설치해 더욱 견고해 보인다. 건축을 맡은 육군 1110 야전공병단 장병들은 인근 덕정리에서 화강석을 실어 왔다. 이 장군은 피의 박해와 6ㆍ25 전쟁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은 가톨릭을 '하느님이 보호하는 굳건한 성'의 이미지로 세상에 드러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포천 본당은 춘천교구 서부지역, 즉 경기북부 지역의 복음화 산실이다.

구 성당은, 고풍의 운치 있는 성당 분위기 덕에 드라마 등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져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아치형 출입구 위 "성 가브리엘 성"'이라고 새겨진 문패와 종탑에 걸려 있는 종이 한때 이곳이 포천 지역의 신앙 터전이었음을 말해준다

ⓒ시민기자 김나경

구 성당 아래터에 새로 지어진, 현재의 포천성당 본관 모습, 크고 웅장해졌지만, 구 성당의 운치를 따라가지 못한다. 구 성당에 가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며 숙연함을 느끼게 된다.


[천주교 춘천교구 포천성지성당]
- 주소: 경기도 포천시 왕방로 191
- 전화: 031-534-0057
- 홈페이지: http//cafe.daum.net/pccatholicchurch (안내를 받으실 단체는 미리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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