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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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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삶의 다른 이름이다
[서평] <그림 공부, 사람 공부>
2013-10-14 조회수 : 3783


"아마추어 작가는 화면 위에 붓질을 더하는 것을 고민하고, 프로 작가는 붓질을 덜어내는 것을 고민한다. 위대한 작가는 덜어내고 덜어내서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일을 멈추지 않는다. (…) 나는 지금 내 인생이라는 화면에 몇 번 붓질을 하고 있을까. 쓸데없이 혹은 습관적으로 불필요한 붓질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25쪽)

학교에 다닐 땐 그냥 공부를 했다. 시키니까 했고, 남들이 다 하니까 했다. 그런데 지금은 공부가 참 중요하단 생각을 한다. 삶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잘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매순간 공부를 하려고 한다. 미술평론가 조정육 선생의 <그림공부, 사람공부>를 들었다. 뭔가를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첫 장 ‘텅 빈 데에 오묘한 것이 있다’에서 뭔가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 내가 끊임없이 채우기만 바랐던 건 아닐까. 책 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공부, 사람공부>는 동양미술 전문가인 저자가 그림을 통해 옛 현인들의 지혜를 전하는 책이다. 아주 오래 전 그림들이 아직도 생생한 감동을 전하는 것처럼, 그 속에 숨겨진 지혜는 매우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느낌이다. 또 책 속에는 저자가 고민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남과 다른 삶을 사는 듯한 이질감, 잘 살고 있나에 대한 회의, 또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까지. 저자는 이러한 고민을 안고 그림 앞에 선다. 그때 그림은 ‘괜찮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정육 선생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왜 이렇게 쓸모가 없을까’란 고민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을 무렵 마주한 앙코르와트. 저자는 그곳에서 돌을 나르다 죽어간, 이제는 흔적도 없는 수많은 ‘무명씨’를 느낀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 위대한 예술은 존재할 수 없으리라.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의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림도 그렇다. 별로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제시’가 그림을 완성한다. 임웅의 ‘환선사녀도’가 그렇고, 허곡의 ‘금어도’가 그렇다. 결국 이렇게 고백한다. “살아 있는 혹은 살았던 모든 존재는 한번 생명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하다.”(28쪽)

우리 모두가 충분히 귀한 존재고,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시련이 단숨에 멈추는 건 아니다. 세상의 것들과 비교해서 찾아오는 끊임없는 장애와 결함들. 결함이란 무엇일까? 남과 달라 결함이 생긴다면 모두가 같아졌을 때 결함은 사라질까.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똑같은 지극히 밋밋하고 폭력적인 세상이다. 저자는 이한철이 그린 ‘김정희 영정’을 보면서 결함을 긍정한다. 김정희의 얼굴은 마마자국으로 보기 흉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얼굴의 결함을 인생의 결함으로 전이시키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흠이 우리의 인생을 슬픔에 밀어 넣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림을 보고, 지혜를 배우면서 생(生)에 대한 의지가 충동한다. 새해에는 뭔가 새로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때 저자는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 저자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광경을 목격하고 신비로움과 동시에 알을 깨는 고통이 얼마나 큰 건지 느낀다. 몇 시간 동안 껍질을 깨고 나와 지쳐 고개를 숙이고 잠시 쉬는 저 조그만 생명. 그들은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기 위해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달리 먹는다고, 새해가 된다고 사람이 자연스레 달라지지 않는다. 혜가 스님은 깨우침을 받기 위해 자신의 한 쪽 팔을 잘랐고, 신윤복은 양반층의 실체를 까발리는 작품을 그려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또 정선은 ‘지도를 그리냐’는 비아냥을 뒤로하고 조선의 진경을 찾았다. ‘No Pain, No Gain!’

사람은 태어날 때 밥그릇을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누구나 살 길이 있다는 거다. 살면서 겪는 고통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쉽게, 편하게 살면 좋다. 하지만 어딜 봐도 그런 삶은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겪어야할 고통이라면, 아니 고통이 삶의 다른 이름임을 받아들인다면 의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 고통으로 오늘도 귀한 삶을 살 수 있으니까. 아픔과 슬픔, 희망 그리고 귀한 삶. 더욱 살기 힘든 세상이라지만 그림 속 살아있는 우리 선조들에게서 지혜와 삶의 의지를 배운다. 

시민기자 안효원(mmb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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