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꽃에 대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행사 때 장식으로나 사용하는 것이 꽃이었다. 그 꽃에 감동받아 시적 감성이 떠오르고, 갑자기 울컥해진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남자들도 나이 먹으면 감성적이 된다. 오히려 사춘기 소녀들보다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운전을 하고 가다보면 43번 국도변 더 정확히 말하면 포천시 종합사회복지관을 지나 교육 지원청까지 가는 길목에는 꽃에 대한 감흥이 없는 목석같은 사람도 눈을 돌리게 만드는 인상적인 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솔직히 이 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나팔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 강렬한 붉은 빛도 그렇고, 바람에 한들거리는 몸짓도 그렇고 존재 자체로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내가 만일 시인이었다면 이 꽃들을 마주하면서 대번 시상이라도 한 자락 나왔을지 모르겠다.
ⓒ시민기자 이정식
일 때문에 이 길목을 자주 들락거리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작은 바람결에도 속절없이 흐느적거리는 저 나약해 보이는 꽃들은 분명 누군가 잘 저 자리에 있을 수 있게 관리해주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관심과 사랑을 받은 꽃들은 쉴 새 없이 달려대는 차들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천 번 허리를 굽었다 폈다 하면서 사람들의 애정 어린 눈빛을 받고 있는 것일 거다. 하루는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뒤에서 운전하는 이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가지 않던 길목에 차를 잠시 세우고, 차 뒤 칸에 무심하게 앉아있던 카메라를 들고 내렸다. 누가 뭐랄 것 없이 나는 그저 셔터를 눌러댔다. 그 폼새가 영락없는 글쟁이다. 지금 이러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머쓱해지는 상황일지라도 저 아름다운 꽃들을 렌즈에 담고 싶었다. 언제까지 저 꽃들이 내 곁에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리고 왠지 모를 고마움과 애달픈 감정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꽃들이 저렇게 아름다운 몸짓을 할 수 있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고, 그 덕분에 나도 감동을 받은 것이니 이것도 선순환의 사회 시스템이라 해야 겠다.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 흘리고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이나, 흐느적거리는 저 꽃이나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할 것이다.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이 꽃들은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아름다운 이벤트임이 틀림없다.ⓒ시민기자 이정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