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요소식

  • 시민기자
  • 주요소식
여러분에게 4월 19일은 어떤 날인가요?
2014-04-18 조회수 : 4566

내일은 4월 19일이다. 공휴일도 아니고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이 4.19혁명일 기념행사가 있는 날이구나 하고 지나가는 날일 것이다. 관계자들의 입김이 아직 사회 곳곳에 미치는 나라다 보니 교과서에서도 짧게 다뤄진 4.19혁명, 그 54주년 기념일이 바로 내일이다.

* 4.19혁명 기념일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 영구집권을 위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전국 학생과 시민들이 항거한 4.19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한 기념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의 자유, 민주, 정의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 시기키고 희생자 영령을 추모하여 민주, 정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정부주관 행사로 거행하여 오고 있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발췌)

▲4.19혁명

나는 운이 좋게도, 4.19혁명으로 인해 만들어진 혜택들을 누릴 기회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었던 김영삼 선생님께서 울분을 토하며 가르쳐주신 근현대사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독립문역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다녀 하교 후에는 한 블록 옆의 서대문에 위치한 ‘4.19혁명기념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대학에 가서 연예를 할 때 만났던 친구가 수유리에 살고 있어서 근처 조용한 곳을 걸으며 데이트를 하곤 했는데 그 곳이 국립 4.19 민주묘지였다. 그리고 지금의 자유로운 생활은 4.19혁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옛날에 저런 일이 있었구나.’, ‘이 도서관 사람도 적고 쾌적하니 너무 좋다.’, ‘왜 이 공원에서는 큰 소리를 내면 안 되고, 맥주 등을 먹으면 안 되는 거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다 보니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었고, 정신적으로 미숙했던 시기라 철이 없었던 것 같다.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된 건, 부끄럽지만 한 할아버지의 꾸중이 계기가 되었다. 경건하게 지켜져야 할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입맞춤을 하다 크게 꾸중을 들었기 때문이다.

▲4.19혁명 포토갤러리 http://www.419revolution.org/gallery/gallery_01.asp

2014.4.18. 알바몬에서 대학생 4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4.19혁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대학생들에게 물은 결과 응답자의 30.4%만이 ‘4.19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도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58.3%가 ‘관심은 있지만, 실제로 많이 알지는 못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모집단의 수가 작아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수치지만, 부끄러운 결과이다.

4.19에 대해 찾아보면 울컥할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3.15 부정선거, 박정희 대통령의 5.16군사 쿠데타에 대한 개인적 평을 굳이 적고 싶지는 않다. 명백한 잘못으로 보이는 일도 다른 입장에서, 혹은 특별한 공을 들어 정당화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간략히 4.19혁명의 전후과정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3.15부정선거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3.15부정선거는 이승만이 이끄는 자유당 정권의 재집권을 위해 온갖 부정행위가 자행되었던 정•부통령 선거이다. 사전투표, 반공개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의 조작발표, 대리투표 등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제도를 무너뜨린 사건이다. 이후 마산지역에서 3.15부정선거에 발발하는 시위가 발생하였고, 시위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상태로 약 한달 뒤 바다에 떠오른다.

- 고려대학교 4.18 선언문 -
기성세대는 자성하라. 마산 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하라. 우리는 행동성 없는 지식인을 배척한다. 경찰의 학원출입을 엄금하라. 오늘의 평화적 시위를 방해하지 마라.

이후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4.18일 고대 학생들이 평화적 시위를 개최했으나 경찰의 비호를 받고 있는 반공청년단의 폭력배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요청하는 학생 및 일반인들의 가세로 시위규모는 급격히 확대, 경찰은 무차별 발포를 실시해 사망자 100여명과 부상자 450여명이 발생하였다.

이후 전국 27개 대학 교수단 300여명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국회까지 행진 시위를 벌이며 이승만 정부의 퇴진을 요구, 결국 이승만은 4.26 하야 성명을 발표한다. 4.19는 세계사에서 유래 없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성공한 혁명이다. 하지만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미완의 상태로 좌절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립 4.19 민주묘지 http://419.mpva.go.kr/

소흘읍 이동교리에 위치한 가톨릭 묘지에는 장면 국무총리가 안장되어 있다. 장면 국무총리는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국회에서 제 2공화국 국무총리로 임명된 사람이다.

4.19 혁명에 관한 정보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 [4.19]로 검색하거나, 자유, 민주, 정의의 역사 4.19혁명(www.419revolution.org),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http://www.kdemo.or.kr/2014)를 통해 1960년 4월에 일어난 일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 전문가가 기고한 ‘마산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 - 3.15부정선거, 김주열을 아시나요? 4.19 혁명’을 통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제 54회 4.19 혁명 기념일이 열리는 날이다. 72번 버스를 타고 수유리에 내려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4.19혁명의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에도 새겨져 있다. 1960년에 희생당한 분들이 꿈꿨던 민주주의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민주주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헌법 전문에 '4.19 민주 이념 계승'이 담긴 건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시민기자 백재환(reiyukino@naver.com)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목록보기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평가 2명 / 평균 0.5
의견글 작성
의견글을 작성해 주세요.
최대 500자 / 현재 0자
  • 계산하여 답을 쓰세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
뒤로가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