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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위기를 온 몸으로 막은 청춘들. 육사생도참전기념비!
2014-06-02 조회수 : 4024
▲가산면 우금리에 위치한 육사생도 6.25 참전기념비 ⓒ포천시

육군사관학교 2기생들은 4년제로 육사가 바뀐 뒤 선발 된 재능이 많은 학생들이었다. 28:1 이라는 당시로는 믿기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입교한 것이 1950년 6월 1일이었다. 그렇다! 2기 육사생도들은 이제 겨우 제복을 입고 제식훈련을 몇 번 했을 뿐인데 조국이 그만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만 것이다. 이들보다 선배인 육사 1기 생들도 졸업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전선으로 향하게 된다. 군사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은 말 그대로 중과부적의 잔인한 적들과 대치하게 된다. 당시에 전선을 지킨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들 대부분도 꽃다운 20대 청춘들이었다. 아무리 육사생도라고는 하지만 전선에서의 긴장감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전투가 주는 두려움을 다 떨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밀물처럼 내려오는 북한군 3사단은 사방팔방 요란한 소리를 내는 전차를 앞세워 이들 앞에 섰고 이내 엄청난 화력으로 이들을 향해 공격했다. 하지만 육사 생도들에게는 중화기라 할 수 있는 대포나 전차가 없었다. 전술이고 전략이고 없이 그저 강인한 정신력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맨몸으로 전선에 나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총의 탄약조차 넉넉지 않아 이내 실탄이 떨어지자 말 그대로 맨몸으로 육탄전을 전개하며 필사적으로 내려오는 적들을 막고자 했다. 그래서 이들 중 150여 명이 그 자리에서 전사하게 되고 만다. 생각해 보면 이들은 참 비운의 세대이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교한 수재에 조국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도 있었지만,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무자비한 적들의 무기 앞에서 희생되고 만 안타까운 청춘들이었다. 

▲이 땅에서 전쟁을 온몸으로 부딪친 젊음들은 붉은 피를 뿌리며 조국을 위해
하나뿐인 목숙을 내 놓았다. 그들에게 숙연한 마음으로 존경과 감사의 예를 표한다.ⓒ포천시
 
그 후에도 이들 생도들은 육군 9사단의 병사들과 합류하여 유격대처럼 이산 저산을 넘나들면서 전투를 이어갔다. 이렇게 온 몸을 던져 조국의 부름에 응한 이들의 안타깝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참전비가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 산 89-1에 있다. 큰 길에서 벗어난 소로를 따라 들어가서도 잘 보이지 않는 다소 후미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치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 바쳐 이 나라를 구하고자 한 마음을 닮은 듯 그렇게 소리 없이 세간의 눈을 피해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들도 많은 순간 두려움과 후회, 자신의 불운을 원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인간적인 감정을 애써 외면한 책임감 강한 젊은이들이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 이젠 세월의 흔적도 희미한 한국전쟁이라지만, 그 당시에 이 땅에서 전쟁을 온몸으로 부딪친 젊음들은 붉은 피를 뿌리며 하나 뿐인 목숨을 조국을 위해 내 놓았고 그렇게 산화해 갔다. 그 의미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존경과 감사, 그리고 숙연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예를 표하며 말이다.
   
무궁무진포천 소식지 편집위원 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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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된 의견글 1
  • Dedi 2015-08-25 삭제
    Im quite pleased with the inoirmatofn in this one. 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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