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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피리 연주의 명인과 함께 하는 인생 이야기

시민기자 유재술

 

이제 들판은 모내기도 얼추 끝나가고 신록이 우거져 산이 푸릇푸릇하고, 꽃이 만개했던 벚나무에는 버찌가 어느새 검게 익어가는 초여름. 우리 고유의 향악인 풀피리 연주의 명인 오세철 선생님을 찾아간다.

ⓒ시민기자 유재술

오늘 기자는 풀피리 연주의 대가이자 명인이신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 거주하시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 풀피리(草琴) 예능보유자 오세철 선생님과 선생님이 풀피리 연주를 할 때 장구로 고수 역할을 맡아주시게 되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41호 송서, 율창의 이수자이며 풀피리 전수생이신 윤숙병 선생님 두 분을 모시고 풀피리 연주에 대한 좋은 말씀을 들어보고자 한다.

ⓒ시민기자 유재술

유) 안녕하세요, 선생님.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고 또한 영광입니다. 저는 포천시 시민기자 유재술이라고 합니다. 오늘 오세철 선생님으로부터 그간 선생님께서 풀피리 연주를 시작하여 오늘날 명인의 반열에 오르기까지의 기나긴 이야기의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풀피리 연주의 명인이시기도 하지만 2만여 평의 농사를 지으시는 대농이시기도 합니다. 매우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지금도 서너 시간 동안 연습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떠신지요?

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2만여 평의 벼농사를 지었으나 지금은 한 7천여 평 정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다른 밭농사에 비해 그리 바쁜 것은 아니라서 시간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새벽 3시경 일어나서 혼자 대금의 명곡 청성곡(독주형태의 조용한 음악연주) 위주로 연주하고 낮에는 농사일을 한다든지 또는 공연이나 기타 다른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식사 후 바로 한 시간 반가량 고음으로 처리되는 연주의 연습곡을 연주합니다.

 

유) 선생님께서는 바로 인접한 화적연에서는 물론, 국립생태원 개원행사, 군산세계철새축제, 부천 세계무형문화제, 또 한탄강 지오 페스티벌 등 도처에서 700회 이상의 공연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보통의 정열과 노력으로는 이 많은 공연을 소화해 내기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어떻게 이렇게 바쁜 일정을 감당해 내시는지 놀랍고 궁금합니다.

ⓒ시민기자 유재술

오) 700회라는 것은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은 1천 회를 훨씬 웃도는 공연을 했는데, 그 중 제16대 대통령을 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 앞에서 제10회 환경의 날 공연도 했었고, 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임석하셔서 180여 개 나라가 참가했던 제5회 세계자연보존의 날에서도 공연을 했습니다.

 

유) 말씀하신 것처럼 수많은 공연으로 이미 명인의 반열에 오르셨는데, 처음 이 풀피리 연주를 하시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요.

 

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친척 집에 갔었을 때 이웃집의 수염이 지긋하신 노인이 아카시아 잎으로 창부타령을 부시는데 너무 애잔한 소리와 모습에 반한 것이 시초였어요. 그분이 바로 전금산(田今山) 선생(80세)이셨는데 가르쳐 달라고 졸랐으나 네 번이나 찾아간 다음에야 겨우 허락을 하셨어요. 또 저희 부친께서 소리를 잘하셨는데, 어쩌면 집안의 내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같이 계신 윤숙병 선생님도 부친이 창을 잘 하셨어요. 풀피리는 사람이 말을 하듯이 연주하는 것입니다. 표현력이 아주 정확합니다. 그래서 타고난 소질이 있다면 그만큼 빠릅니다.

 

유) 저의 경우 능숙하지는 않지만 소금, 그러니까 작은 대금이라고 할까요, 피리 연주를 조금 하는데요, 처음에는 소리 내기가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풀잎이라는 악기로 소리를 내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풀잎의 떨림으로 그리움을 연주한다.’는 아주 아름다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풀피리 연주란 이런 것이다.라고 잘라 말한다면 무엇일까요?

 

오) 풀피리는 내 육산과도 같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풀잎이나 나뭇잎만 봐도 저 잎으로 어떤 소리로 어떤 음악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을 연주할 수 있으며 어떤 곡에 잘 어울린다는 감(感)이 바로 옵니다. 풀잎의 떨림이 양악에서는 ‘리드’라 하지만 우리 음악에서는 ‘서’라고 하는데 내가 풀피리로 새소리를 내면 새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여듭니다. 그 정도예요. 내가 부는 풀피리 소리에 새가 화답을 하는 격이지요.

 

유) 어느 글을 보니까 선생님께서는 침엽수처럼 아주 뾰족한 나뭇잎만 아니라면 모든 풀잎이나 나뭇잎으로 연주가 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풀피리 연주의, 말하자면 역사를 더듬어 본다면, 조선시대 악학궤범이나 조선왕조실록 등 고문헌 등에 풀草 자에 피리 笛 자를 써서 초적 또는 초금(草琴)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간단히 풀피리 연주에 관한 역사적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시민기자 유재술

오) 조선시대 홍일동이라는 분이 세조 임금 때 큰 벼슬을 하면서 대식가이신 분이셨는데 이 분이 풀피리를 잘 불었다는 기록이 있고 또 성종 때 만들어진 악학궤범에 풀피리를 부는 방법과 재료 등이 기록되어 있어요. 가장 성행했던 때는 연산군 때입니다. 폐위 직전까지도 왕 자신이 이 풀피리를 연주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승정원일기에 보면 인조 때 김영백이라는 분이 이 초적이라는 악기를 잘 불었는데 청국의 사신이 올 때면 연회에서 이 초적을 불어 조선과 청의 양국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영조 때는 관현맹인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 중에 강상문(姜尙文)이라는 사람이 또 이 악기를 잘 불었다고 진연의궤에 실려있고 , 일제 강점기에는 강춘섭(姜春燮) 이라는 분의 풀피리 연주를 담은 음반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 선생님께서 주로 풀잎 연주를 연습하시는 곳은 어디신지요. 따로 장소를 정해놓고 하신다던가 아니면 특정한 장소 없이 풀잎과 나뭇잎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연습이 가능하시다지. 어떻게 하시는지요.

 

오) 아주 아름답고 경치가 좋은 화적연이 바로 보이는 강 언덕이 이곳으로부터 불과 3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농사철이 좀 한가한 때에는 새벽 풀피리독공(혼자 연습과 공부하는 것)을 합니다. 그러면 쏙독새, 소쩍새, 솔부엉이, 호랑지바귀, 두견이 등 각종 새들이 같이 우는데 그 새소리에 영감을 얻어서 작곡도 했어요. 그것이 바로 10분가량의 오세철류 '풀피리새소리 산조'입니다. 또 그곳에서 새들끼리 나누는 사랑의 언어로 봉장취(음악의 중간에 독주나 합주의 형태로 새소리를 넣어 연주하는 것)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지요.
*. 대담 도중에도 간간이 선생님이 연주하시는 풀피리 소리를 듣고 새들이 모여들어 지줄거리기도 했다.

 

유) 선생님은 풀피리 연주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서도소리의 명창이신 이은관 선생님으로부터 배뱅이굿을 전수받으셔서 1년 만에 완창을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사모님의 권유와 내조에 힘입어 가능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지금도 혹시 완창이 가능하신지요.

 

오)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이 완창인데, 지금은 풀피리 연주에만 전념을 하다 보니 좀 어렵고,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제가 외국을 나갈 때에는 여행 기간에는 연습을 못하니까 그만큼 미리 연습을 할 정도입니다. 하루만 연습을 하지 않아도 목소리에 녹이 스는 것이 소리입니다.

 

유) 한때 풀피리 연주에 몰두하시다가 독초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갔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외에도 많은 에피소드가 있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한 번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 지금 저 앞에 보이는 풀이 비비추인데, 박새풀이라 하는 것이 비비추와 아주 비슷합니다. 아주 독해서 농약이 없던 시절에 이 박새풀과 뿌리를 넣어 물을 끓여서 밭에 뿌리면 벌레가 죽는 독초입니다. 살충효과가 아주 좋은 것이죠. 그 박새풀을 비비추로 잘못 알고 입에 물고 불다가 죽을번 했지요. 깊은 산중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어머님이 친구분들과 나물 가셨다 약으로 쓰려고 캐오셔서 엮어 매달아둔 것을 소리가 잘나 신나게 불었는데 입에 균열이 가면서 진액이 몸속으로 들어가 그만 중독이 되어 병원에까지 실려 가는 일이 있었지요. 또 한 번은 옻나무 잎이 아주 또 소리가 잘 나는데 그 옻나무 잎을 따서 불다가 온몸에 옻이 올라 한동안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민기자 유재술

유) 선생님께서는 풀잎 연주와 또 서도소리의 대가이시기도 하지만 직접 곡을 만드셔서 ‘한탄강 아리랑’ 이라는 노래를 여러 명창들과 함께 공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명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에 얽힌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태어나신 곳은 철원이시지만 자란 곳은 다른 곳이고, 지금은 이렇게 영북면 자일리에서 살고 계십니다. 어떤 연관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 한탄강 아리랑은, 한탄가의 발원지가 북한의 평강지역이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바람에 현무암의 협곡이 생기면서 엄청난 기암절벽의 절경이 많은데 맨 위 칠만암을 시작해서 직탕폭포, 고석정, 순담계곡, 화적연, 멍우리 협곡, 비둘기 낭 등 각 명승지 넣어 곡을 짰어요.

비록 6.25 전쟁 이후에 태어난 전후세대이기는 하나 한국전쟁 통에 수없이 주인이 바뀌는 철원지역이 아군과 적군이 전투 중에 흘린 피가 한탄강 강물을 붉게 물들이면서 흘렀던 격전지였으니 분명 애절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강원도 지방의 애잔한 소리를 바탕에 넣어 곡을 만들었지요. 그러니까 강원도 특유의 메나리토리, 그리고 황해도와 평안도의 서도지방의 수심가토리, 또 경기지방의 이별기조 등이 들어간 곡이 바로 한탄강 아리랑입니다. 한가지 더 자랑하고 싶은 것은, 우리 포천의 자랑이자 도끼상소로 유명한 면암 최익현 선생이 한양친구들과 금강산 유람을 가던 중 화적연에 들러 지은 화적연 한시를, 풀피리 수성가락에 여기 있는 서울시 문화재 제41호인 윤숙병 선생이 창을 얹어서 부른 율창(律唱)이 있는데 정말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 1천 회를 훨씬 상회하는 공연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평생 잊지 못할 공연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오) 아무래도 큰 무대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 대통령께서 임석하셨던 공연이 기억이 생생합니다. 음향 시스템이라던가 또는 조명 기타 공연 설비에 있어 최상의 시스템이니까, 또 대통령의 바로 앞 약 3~4m 정도 거리에서 공연을 하게 되니까 긴장도 되고 그랬습니다. 말하자면 옛날 임금 앞에서 공연을 한 셈이니까요.

 

유) 기회가 있다면 저도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만, 지금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는 후학들이라던가 또는 따로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한 장소라던가, 이런 근황은 어떠신지요.

 

오) 풀피리, 초적이라는 것이 큰 악기는 아니라서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가능하기 때문에, 보시는 것처럼 이 작은 공간에도 이십명 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도 공연이 가능한데, 코로나19로 해서 대면 공연을 못하니까 온라인으로만 공연을 하게 되는 것이 좀 안타깝지요. 다음 달부터는 대면 공연이 계속 많이 잡혀 있습니다.

 

유) 앞으로 선생님의 바램이나 포부 또는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으실지 궁금합니다.

ⓒ시민기자 유재술

오) 풀피리가 사실 구하기는 쉬운 재료이지만 불기가 어렵습니다. 타고난 유전적 소질이 있다면 금방 음을 터득하기 쉽겠지만 처음 소리내기 까지가 힘이 드는데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또 요즈음의 세대들은 힘이 드는 어려운 일은 잘 안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서 후학들이 계속 이어지지 않고 끊길까봐 걱정입니다. 사실 풀피리 연주는 연산군 시절이 가장 전성기였어요. 유능한 연주자가 많이 배출이 되어서 풀피리 연주가 끊어지지 않고 연산군 시절까지는 아니라도 지속적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유) 지금까지 장시간 본업이신 농사일과 또 여러 가지 일로 바쁘실 텐데 이렇게 대담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머리숙여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바람이 다소 불고 멀리서 지나는 차량들의 소음이 조금 있었으나 날씨가 맑고 볕이 좋았던 날이었다. 하얀 감자꽃과 옅은 연두색의 비비추 등이 오세철 선생님의 온화하고 따스한 품성이 윤숙병 선생님의 은은한 미소와 더불어 담소를 나누는 자리를 더욱 빛내주는 자리였다. 귓가에는 선생님의 애잔한 풀피리 소리가 귓가에 은은한데 다음의 일정 때문에 바쁘게 일어서야 하는 것이 야속하다. 우리 한국의 전통문화 중 하나인 풀피리 연주가 더욱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연주곡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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