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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놀이문화, 가노농악을 만나다!

시민기자 유재술

 

[이 기사는 대담형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인은 포천시에서 운영하는 시민기자단의 유재술 기자라고 한다.
오늘 한국농악보존협회 포천지회 박민준 지회장님과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 오늘은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인 농악에 대해서 지회장님께 그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시민기자 유재술

유) ‘한국농악보존협회’의 포천지회장이시다. 농악이야 당연히 오랫동안 전래되어온 우리의 민속놀이 문화이지만, 잘 모르는 신세대를 위해 단체의 성격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박) 본래 포천에는 농악이라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2003년경에 창수면에 가노농악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가노’라는 말이 우리 창수면에 가노리 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오가리 일대이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여러 청소년들이 창수면의 어르신들을 찾아뵈면서 사라져 가는 ‘가노농악’에 대한 채록 작업을 했다. 그러던 중에 2011년 전주대사습놀이에 출전해서 장원을 했는데, 이때 포천시가 가노농악을 향토유적 제50호로 지정을 했고, 그래서 이를 보존하고자 한국농악보존협회를 창설해서 현재 100여 명의 단원을 이끌고 있으며, 주사무소가 바로 이곳 옛 보장초등학교가 지금은 ‘포천시 공동지원센터’ 이다.

ⓒ시민기자 유재술

유) 기자가 처음에 가노농악이라 들었는데, ‘가노’라는 단어가 주는 생소함이 있다. 이 가노농악과 한국농악보존협회와는 어떻게 다른가?

박) 한국농악보존협회는 고유번호가 등록된 전국적인 단위의 단체이다. 단체를 운영하다 보면 자금이 필요한데 포천시 안에서는 예산을 마련하는데 있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창설된 단체이고, 가노농악은 한국농악보존협회 산하의 단체라고 보면 된다. 창수면 안에서 활동하는 지회 성격의 단체이다.

유) 농악을 접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동기나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박) 원래 태어난 곳은 운천인데 어릴 적에 운동을 잘했다. 육상에 소질이 좀 있어서 스피드가 좀 있다 보니 축구팀에 스카우트되어 평택으로 가서 모 중학교에 다니던 중 몸이 좀 좋지 않아서 중단하고 다시 포천으로 돌아와서 포천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포천일고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 민속반 동아리에 들어가서 포천시립예술단의 감독이신 한동엽 은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을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농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직업으로 되었다.

유) 포천일고 시절부터 농악을 시작하여 나중에는 극장경영학으로 경희대에서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고 들었다. 대단한 열정이다.
기자도 청년 시절에 사물놀이에 취한 적이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 있다. 다 같은 우리 음악이지만 농악과 사물놀이는 또 다른 매력이 있을듯하다.

박) 지금은 농악이 퓨전형식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인데, 시대에 따라 다르게 변화하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움직임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사물놀이가 작은 실내공간에 앉아서 연주를 하는 형태의 음악이라면 농악은 커다란 마당처럼 널찍한 공간이 필요하다. 공연자의 숫자도 사물놀이가 네 명이 하는 공간음악이라면 농악은 소수의 공연자에서부터 수십여 명이 공연하면서 관객이 같이 참여하는 장르이다. 각각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본다.

ⓒ시민기자 유재술

유) 약 10여 년 전에 가노농악으로 전주대사습놀이에 출전하여 장원을 차지했다고 들었다. 어마어마한 성과이다. 첫 출전에 장원이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박) 대회 출전 이전에는 동아리 정도의 규모였다. 포천시 ‘4-H회’의 금전적 지원을 받아 악기도 구입하고 또 연습을 하면서 수년간 역량을 길러오다가 그 대회에 출전을 하게 되었다. 전국대회로 엄청나게 큰 대회이다. 가노농악이라는 큰 이름 아래 선후배들을 이끌고 나가서 기왕이면 일등을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목표를 세우고 연습하면서 많은 땀을 흘린 노력의 결과이다. 나 자신으로서도 병역의 면제 혜택을 받는 등 평생에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다.

ⓒ시민기자 유재술

유) 우리 가노 농악이 그간 마카오 등지에서 해외공연도 하면서 국위 선양도 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한마디 부탁드린다.

박) 2011년 경 포천시립예술단에 제가 가입을 하는데 그때 감독이 한동엽 선생님이셨고, 그분이 추구하는 바가 인지도가 높은 대회에 참가하여 포천의 문화를 알리자 하는데 중점을 두셨다. 그래서 정부 중앙부처가 주관하는 여러 대회를 참가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마카오에서 열린 청소년 페스티벌은 물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외교부의 지원을 받아 참가했던 중국에서 열린 한중수교 20주년 기념공연도 있고, 또 헝가리에 가서 우리의 전통농악의 문화를 알리기도 했다. 문화사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자부한다.

유) 이렇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공연을 해왔는데,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듯 2020년 초에 발생한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문화예술계가 가장 큰 직격탄을 맞았는데, 우리 가노농악 부문도 활동이 많이 위축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어떤가.

박)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나 자신은 그래도 여러 가지 교육적 사업에 활동하는 곳이 있어 지속적으로 이 계통에서 일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농악 등 우리의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에 헌신하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공장 등 타 업종으로 이직을 하게 된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 본인 나름대로 이 길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시민기자 유재술

유) 지금은 농업이 고령화라던가 여러 가지 이유로 기계화가 많이 되어 농악을 펼치며 힘든 농사일의 고된 피로를 달래 줄 기회가 없지 않나 생각된다. 그래서 농악을 실연하고 또 알릴 기회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박)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오케스트라 해볼래, 농악을 해 볼래 하고 물어보면 많은 아이들이 화려한 서양음악을 선택을 한다. 음악이 알려지는 기회가 점점 우리 국악 계통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자꾸 보고 접해야 기회도 오는 것인데 이것이 아쉽다. 청소년기에 농악을 접했던 저로서는 특기생으로 대학을 진학할 기회도 국악보다는 양악에 문이 더 열려있다는 현실이다. 음악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그만큼 변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안타깝다.

유) 우리 농악에 쓰이는 여러 가지 장단이 있는데 가령, 길군악 칠채,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 몇 가지 장단을 좀 보여주시겠는가.

박) 기본적으로 경기농악을 바탕으로 해서 삼채를 시작으로 쩍쩍이 가락, 자진모리, 굿거리 등이 기본이다.

ⓒ시민기자 유재술

유) 농악보존회에 몸담고 있는 지회장으로서 향후 어떤 계획이나 포부가 있는지 궁금하다.

박) 2011년 전주대사습놀이 대회처럼 큰 대회에 참가해서 다시 한번 그 영광을 되찾고 싶고, 또 그런 대회를 준비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봉사활동의 개념으로 포천시의 14개 읍면동을 모두 소화하는 순회공연도 고려하고 있다. 일종의 ‘찾아가는 순회공연’이라 하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재를 많이 양성해서 이 가노농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유) 지금 현재 진행 중인 ‘농악보존협회와 함께하는 ’우리동네 예술놀이‘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박) 이 사업은 교육청의 공모사업이다. 우리 지역의 초, 중학생들을 중심으로 방과 후 마을학교의 개념으로 이들이 학교를 찾아와서 농악이나 무용 등 각 분야의 전문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학교의 정규학습과정에서는 접하기 힘든 전통예술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미 교육신청 기간은 지나갔고 지난주부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유) 이번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농악'에 대해 바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 바쁘신데 불구하고 대담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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