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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던 돈가스에 대한 추억.
2012-05-14 조회수 : 4265

어릴 적 교사이시던 부모님 덕분에 다른 아이들보다는 좀 여유 있는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그런 말을 많이 듣고 나 자신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잦은데 사실 어릴 때는 좀 어렵고, 부족한 듯한 시절을 보내야 어른이 되어서 생활력도 강해지고, 근성도 생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전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신읍동에 살면서 다른 아이들은 별로 가보지 못한 식당인 경양식 집이라는 곳을 가끔 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지금의 자원봉사센터가 있는 당시의 등기소 옆에 경양식집이 포천에서는 유일하게 하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가끔 가보긴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곳에 그런 식당이 있었는지도 조차 잘 모르고 있었지요. 어릴 적 그 경양식 집에서 만난 주메뉴인 돈가스는 참으로 맛나고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칼로 음식을 즉석에서 베어 먹는 것도 신기하고 서양 사람들처럼 포크로 그 자른 음식을 입에 넣는 것도 참 신기했었죠. 내가 마치 아주 잘 사는 나라의 근사한 곳에 와서 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서울로 전학을 가서 가끔 다시 집에 내려올 때 서울의 친구들과도 함께 내려오곤 했는데, 그 녀석들도 내가 그 경양식 집을 데리고 가면 그렇게 신기해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습니다. 역시 서울 친구들도 그렇게 쉽게 가보진 못한 곳이 돈가스 집이었던 것입니다. 

수프에 내가 능숙하게 소금이랑 후추를 넣어 먹으면 녀석들도 눈치를 보다가 너도나도 맛도 보지 않고 수프에 소금과 후추를 잔뜩 넣곤 했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들에게 수프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숟가락질해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또 점잖게 훈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사실 그것이 맞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릅니다. 
 
그리곤 나온 돈가스에 나이프 질을 할 때는 오른손을 사용하고 다시 집어 들 때는 손을 바꿔 오른손으로 포크를 잡아야 한다고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이야기하듯 하고 했습니다. 요즘이야 너무나 흔한 음식이 되어 버려서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자주 먹는 음식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게 격식을 갖추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길을 나서 작은아들이 먹고 싶다던 돈가스 집에 들어서니 저도 모르게 그런 예전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이젠 아예 이렇게 돈가스가 잘려서 나오니 더 이상이 나이프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예전의 내 친구들과 같은 광경이 연출되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돈가스에 얽혀 있는 기억들을 한올 한올 풀어내다 보니 내가 그렇게 남들보다 쉽게 돈가스를 먼저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도 흘러나왔습니다. 어버이날이 지나긴 했지만 언제 다시 부모님과 돈가스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좀 아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시 이렇게 흔해진 돈가스처럼 내가 마음속에서 어버이날을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도 좀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생활은 여유가 분명히 있어진 것 같은데 감동까지 많아진 것은 아닌 것이 요즘의 생활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그렇게 귀하게 먹던 돈가스에 대한 기억을 더듬듯이 나 자신의 생활을 반추하면서 살게 되겠지요. 그러고 보면 과거 어른들이 하시던 말처럼 정말 세월이 잠깐입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먹던 돈가스는 지금도 내 앞에 있는데 그 돈가스를 마주하고 앉은 나는 이제 거의 반백의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그저 작은 일에도 작은 음식에도 감사와 좋은 기억을 가질 일입니다.

언젠가는 그 좋은 기억이 그 음식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시민기자 이정식(jefflee2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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