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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의 역사, 그 중심의 포천
2013-03-12 조회수 : 6389

 
포천 반월산성

1. 국토의 중심 포천

포천시는 조선시대까지 분리되었던 포천군과 영평군이 통합하여 이루어진 곳으로 1914년 포천과 영평이 최종 통합하여 2003년 도농복합시로 승격되었다. 포천시는 지리적으로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강원도 철원군, 동쪽으로 강원도 화천군과 경기도 가평군, 남쪽으로는 경기도 의정부시와 남양주시, 서쪽으로 경기도 연천군과 동두천시와 접하고 있어 남북을 합친 국토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포천의 지형은 함경남도 안변과 강원도 평강에 있는 높이 586m의 추가령을 중심으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내린 골짜기인 추가령구조곡의 범주에 속하며 동쪽으로 광주산맥, 서쪽으로는 천보산맥이 남으로 펼쳐져 있어 중앙에 위치한 영평천과 포천천변 분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포천의 지리적 입지를 볼 때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광주산맥과 천보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어 철원과 서울을 이어주고 있으며, 동서로 산간지대 사이를 영평천이 흐르면서 가평과 연천을 연결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포천은 경기북부에서 남북과 동서의 교착지점으로 국토의 중심에서 동서남북소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지역이다.

포천은 이와 같은 지리적 이점 때문에 한탄강 유역의 구석기 유적, 영평천의 영송리 유적, 포천천의 자작리 유적 등 선사시대부터 다양한 문화가 꽃피웠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점령하던 요충지였으며, 이후 궁예가 철원을 도읍으로 태봉국을 세우자 그 영역으로 포함되었다. 그리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도성의 배후지로서 정치, 경제, 국방의 요충지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

2. 포천 지명이 탄생한지 600년

포천지역은 선사시대부터 하천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발달해 왔다. 그러나 지역 고유의 지명은 삼국시대 와서 백제와 고구려의 영역에 속했을 때 비로소 정해졌다. 그 이름은 ‘마홀(馬忽)’로 물골이라는 뜻으로, 포천은 크고 작은 많은 하천에 터를 잡고 생활을 영위하던 지역이라는 의미이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포천지역은 견고한 성(城)이 많다고 하여 ‘견성군(堅城郡)’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와서 도성의 배후지로서 ‘포주(抱州)’라는 지명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명칭인 ‘포천(抱川)’이란 지명은 조선 태종대에 와서 사용된 지명이다.


금수정

태종은 조선의 3대 임금으로 고려의 잔재를 청산하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고려시대 문란했던 지방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편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지방행정 구역의 등급을 경(京)-주(州)-부(府)-군(郡)-현(縣)-진(鎭) 등으로 구분하고 이에 상응하는 지방관을 파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군현의 이름이 지역의 읍격에 맞지 않는 경우가 상당하였다. 예를 들어 경주, 전주, 의주 등과 과주(과천), 금주(금천), 괴주(괴산), 죽주(죽산) 등은 지역의 격이 달랐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1403년(태종 3) 안노생 등은 “군현과 향소부곡의 등급과 지명이 혼잡하여 일정한 기준 없이 함부로 승격되었으니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 이 건의가 계기가 되어 태종 초에 군현제 개편에 대한 끊임없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후 약 10년에 걸친 준비과정을 거쳐 1413년(태종 10) 10월 대대적인 지방제도 개편이 이루어진다. 그 중 군현의 지명과 관련하여 “각도의 단부(單府) 고을을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감무(監務)를 현감(縣監)으로 고치고, 무릇 군(郡)․현(縣)의 이름 가운데 주(州)자를 띤 것은 모두 산(山)자와 천(川)자로 고쳐라(『태종실록』 권26, 13년 10월 15일)”라고 하며 대도호부(大都護府), 목(牧), 도호부(都護府)를 제외한 군, 현의 지명 중 주(州)자를 쓴 고을의 명칭을 지역 특성에 맞게 산(山)과 천(川)으로 변경하였다. 이 시기 전국적으로 약 60개의 군․현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포천지역도 고려시대의 지명인 ‘포주(抱州)’에서 물의 고장답게 ‘포천(抱川)’으로 변경하고 지방관으로 현감을 파견하였다. 따라서 2013년은 우리지역에서 포천이라는 지명이 사용된지 600년이 되는 해가 된다.

 
화산서원 동재, 서재

3. 새롭게 비상하는 포천

앞서 언급한데로 2013년은 포천이라는 지명이 사용된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물론 포천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지역에 자리하면서 다양한 문화가 발달했고, 철기시대,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국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현재의 지명인 ‘포천’이 사용하게 된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과거 우리지역의 영광을 되새기고 앞으로 우리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일은 어떠한 일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시에서는 2011년 10월부터 시작해 3차례의 연혁검토위원회와 1차례의 학술심포지엄․토론회 등을 거치면서 지역의 연혁에 대해 새롭게 연구하게 되었고, 지역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포천 지명 600년을 확정지어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기념사업은 ‘포천 재도약의 원년’을 기본개념으로 해서 “600년 포천, 새롭게 비상하다”란 주제로 역사속의 포천을 되새기고 국토의 중심으로 명성을 떨쳤던 문화를 되살려 향후 포천 발전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였다.


아트밸리

기념사업은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추진된다. 첫째 포천의 발전을 기원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포천 무궁무진 기원제’, ‘포천 시민을 위한 희망 솟대 페스티벌’ 등이 있고, 두 번째 전통문화의 계승과 역사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학술심포지엄’, ‘포천학 연구 총서 간행’, ‘포천 향토자료 전시회’ 등의 사업을 계획 중에 있다. 특히 포천 향토자료 전시회는 현재 우리시 출토 및 기증 유물이 약 3만점에 달하고 있으나 관내에 소장 및 전시할 공간이 없어 외부에 보관되어 있는 포천 유물을 전시함으로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교육 및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세 번째로 지역 이미지 개선과 미래 비전 제시를 위한 사업으로 ‘포천 상징조형물 및 타임캡슐 조성’, ‘포천 프라이드 600 선정’을 통해 향후 우리시 발전의 성장 동력을 제시하고자 하며, 마지막으로 문화예술 부흥 부분으로 포천 600년을 기념하여 민, 관, 군 600명이 함께 우리시 전통 예술문화인 가노농악을 공연하는 ‘포천 화합 한마당’을 비롯하여 다양한 지역 문화예술 행사가 계획 중이다.


현재 추진 중에 있는 ‘포천 탄생 600년 기념사업’은 관 주도가 아닌 민․관 모두가 참여하는 사업으로, 예산을 최대한 절약하고자 신규 사업은 지양하고 기존의 사업을 확장 및 변경하여 추진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사업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연중 시민들이 축제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도록 3월부터 12월까지 다양한 행사를 개최될 예정이다.

포천 600년 기념사업을 계기로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의 전통문화와 역사 정체성을 확립하고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최동원(포천시청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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