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요소식

  • 시민기자
  • 주요소식
우리와는 멀어보이는 크림반도의 분쟁을 바라보면서...
2014-03-18 조회수 : 5337
최근 우리와는 꽤나 먼 거리에 있는 흑해 부근의 한 반도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름만으로는 무척이나 친근감이 가는 크림반도가 바로 그곳이다. 흑해라는 바다는 참 묘한 구석이 있는 해양으로 아주 좁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마르마해와 지중해로 연결되는 우물처럼 고립된 바다이다. 바다라기보다는 커다란 호수 같은 이곳은 무척 많은 나라들이 서로 연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반도라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듯이 흑해의 크림반도도 이런 지리적인 영향으로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 이어지던 곳이다.

▲흑해.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지금의 사태는 러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 사이의 국가 내적인 문제에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불거진 사태라고 할 수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무척 긴 사연이 내재되어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대통령이 친 서방 즉 EU와의 관계를 취하고 싶어 하지만, 크림반도 연안의 지역에서는 친 러시아계가 더 많이 있고 이를 러시아가 권리보호 차원에서 개입한 것이 사건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약 150 여 년 전에도 이런 분쟁이 이곳에서 있었다. 바로 크림전쟁이라 불리는 비참한 전쟁이었다. 크림전쟁은 제정 러시아와 흑해 일대에서 패권을 놓고 다투던 투르크(터키)가 전쟁의 주역이지만 영국과 프랑스, 이태리, 오스트리아 등이 함께 참전하면서 미니 세계대전으로 비화된 전쟁이다.

러시아는 예루살렘 일대의 권력을 프랑스가 잡게 되는 것을 빌미로 그 일대 서로마 정교회 교인들을 지킨다며 전쟁을 일으켰다. 그것은 명분 일 뿐 투르크를 흑해 일대에서 몰아내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런 러시아의 흑해 장악에 부담을 느낀 영국과 프랑스 등은 연합국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대응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투르크가 예뻐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러시아는 중간에 황제가 죽는 등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고, 연합국의 물량을 이겨내지 못해서 나중에 패배를 인정하면서 파리조약을 맺게 되지만 연합국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어 상처뿐인 승리라는 오명을 안게 된 전쟁이었다.

▲Franz Roubaud의 The Siege of Sevastopol의 일부.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Florence Nightingale by Augustus Egg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분쟁을 보면서 중학교 시절 읽던 책 한 구절이 떠올랐다. 바로 백의의 천사이자 적십자 창설을 주도한 나이팅게일의 이야기이다. 영국군의 간호사였던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마치 어려울 때 나타나 도움을 주는 요정처럼 인식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는 크림전쟁의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전장 상황에 경악하여 전쟁 후 적극적으로 군의 의료체계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는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들을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장교들은 무리하게 병사들을 전장으로 내몰기 일쑤였다. 기관총이나 강선포 같은 현대적인 무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여간 이어진 이 전쟁에서 연합군과 러시아 입은 손실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크림전쟁을 가리켜 전근대적인 전쟁의 마지막이라는 평가를 하는데 이후 전쟁은 총력전을 펼치는 민관군이 따로 없는 전면전의 양상을 보인다. 그 첫 번째 전쟁이 러일전쟁으로 이때부터 민간이 사상자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게 된다. 급기에 1차 세계 대전에서는 전 국민이 전쟁 상황으로 내몰리는 전 국가적인 전쟁이라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아무튼 크림전쟁은 전투 자체에서 숨지는 병사보다 부상당한 후 질병과 감염으로 죽는 병사의 수가 세 배에 달하는 비이성적인 전쟁이었다. 지휘관들은 야전병원에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병사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끊임없이 새로운 병사들을 사지로 내 몰았다.

또한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종군기자와 전쟁 사진이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기술이 도입되어 전쟁의 생생한 모습이 처음으로 남게 된 것이다. 화려한 군복을 입고 말 위에 올라탄 장교들과 열악한 상태에 그대로 노출된 병사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을 통하여 기상학이 발달하게 되는데 매서운 추위와 비바람, 눈보라가 전투의 승패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간호 인력으로 참전하면서 여성인권이 향상되는 계기도 되었으며 군 간호사라는 직능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군기자들이 보내는 기사를 토대로 언론에 직접적으로 보도되는 전투 상황이 국민들에게 혼란을 가져올 수 있고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전시언론통제라는 정치적인 제재가 가해지는 전쟁이기도 했다.

인류와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가장 비인간적인 문명의 충돌이면서 또 가장 빠르게 세계를 바꾸어 놓는 변혁의 계기도 제공했다. 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전쟁은 이해관계와 이익이라는 이기적인 의도 외에 어떤 대의명분도 없을지 모른다.

우리와는 비록 거리상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긴 하지만, 이곳의 하루하루의 소식에 따라 미국과 세계 경제가 요동을 치고 우리 역시 영향을 받으니 이젠 우리의 일처럼 받아들여진 곳이라고 해야겠다. 지난주 크게 떨어진 주식지표나 등락을 거듭하는 곡물가격을 보면 이 지역의 문제가 더 이상 남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주의 깊게 이 지역을 바라보게 된다.

시민기자 이정식(jefflee2009@naver.com)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목록보기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평가 3명 / 평균 0.3
의견글 작성
의견글을 작성해 주세요.
최대 500자 / 현재 0자
  • 계산하여 답을 쓰세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
뒤로가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