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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시외버스 터미널
2016-03-29 조회수 : 5155
터미널은 사람이 떠나고 돌아오는 곳이다. 먼 지방을 갈 때 터미널에서 가족과 친구, 애인과 이별을 하고 또 반가운 재회를 한다. 올해 큰아들 녀석이 대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주말마다 터미널을 찾아간다. 벌써 몇 주째 아들을 보내고 다시 만나고 하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과거처럼 교통이 불편하고 어쩌다 한 번 타지를 나가던 시절과 비교하면 왕래도 잦고 교통도 편해졌지만, 감정만은 아직도 예전의 애틋한 마음이다.

ⓒ시민기자 이정식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무려 5년이나 포천에서 서울로 통학했다. 너무나 멀게 느껴지던 서울 여행을 매일 했던 것이다. 43번 국도는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였다. 차량의 통행이 적었지만,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매일 아침 첫차를 타기 위해 포천초등학교 앞에 있던 집에서 포천 터미널까지 약 10분 정도의 거리를 늘 뛰다시피 했다. 어느 날 겨울 거리엔 차가운 어둠이 내리깔려, 마치 온 세상에 나 혼자만 살아 있는 것 같은 서글픈 생각마저 들곤 했다.

6시경 직행버스를 타고 의정부로 나가는 길은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올 정도로 익숙한 통학 길이다. 축석고개는 마치 대관령이나 미시령처럼 구불구불 험준한 고갯길이었다. 어쩌다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날이면 도로가 통제되어 학교에 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실제 그런 날은 거의 없었지만, 학교에 못 가게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곤 했다. 포천에서 의정부터미널에 도착하는 데는 50분 정도 걸렸다. 다시 미아동의 학교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12번으로 기억하는 버스는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었다. 안내양이 버스비를 받지 못할 정도로 꽉 찬 버스에서 다시 50분 정도를 시달리며 미아동의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2시간 반을 등교하는 길에 버려야 했다.

축석고개 범바위ⓒ포천시

그때는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들 녀석을 보내는 터미널에 오면 자꾸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분한 마음이 든다.

‘왜 그렇게 먼 학교에 다녔을까?’
‘하루 5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면서 무슨 공부를 한다고 그랬을까?’

물론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었지만, 여행을 가기 위해 가끔 들러야 하는 터미널을 일상생활처럼 들락거렸다는 것이 좀 아쉽다.

‘혹시 내가 지금 아들에게도 내 부모님처럼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우리는 대학을 가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도 다시 취업 걱정에 학자금 걱정에 시달려야 할까?’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야 할 터미널 방문이 꼭 내 반성으로 결론이 나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터미널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시민기자 이정식(jefflee2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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