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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대원군 묘를 찾아가는 시간여행
2020-02-24 조회수 : 5270

시민기자 서상경

지난겨울은 참으로 따뜻하게 보냈다. 한파도 없었고 폭설도 없었다. 눈을 잊은 겨울이 지나간다고 할 때쯤 큰 눈이 한 번 내렸다. 그리고는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라는 경칩이 가깝게 다가왔다. 따스한 기운이 넘치던 날 왕방산 아래 선단동에 있는 전계대원군 묘를 찾았다. 양지바른 곳이라 짧은 햇살에도 포근함이 느껴졌다.

전계대원군은 조선 제25대 철종의 아버지다. 살아생전 험한 삶을 살다가 강화도에서 죽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안장되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1856년 3월이었다. 아마 그때도 왕방산 자락은 오늘처럼 포근한 기운이 머물렀을 것이다.


▲전계대원군묘의 석물ⓒ시민기자 서상경

철종은 누구인가?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하루아침에 임금이 된 인물이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강화도에서의 이름은 원범이다. 조선왕조 철종 대는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가 절정을 이루던 때다. 세도 정치로 탐관오리들의 전횡은 삼정의 문란에서 극에 달해 백성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안동김씨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세도 정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를 모르던 원범을 임금의 자리에 앉힌 것이다.

잠시 철종의 가계도를 살펴보자. 철종의 아버지는 전계군이고 할아버지는 은언군이다. 은언군은 조선 22대 왕 정조 임금의 형이다. 정조와 은언군의 아버지는 사도세자이고 할아버지는 영조 임금이다. 영조-사도세자-정조-순조-헌종으로 이어지던 왕통은 헌종에게 자식이 없자 은언군의 후손 중에서 철종을 선택한 것이다.


▲이정표ⓒ시민기자 서상경

은언군은 정조의 형이었지만 정치적인 모함으로 반역이라는 죄명을 받고 강화도로 귀양 가서 일생을 불우하게 보냈다. 그의 아들 전계군은 어릴 적부터 천성이 인후하고 효성과 우애가 극진했다. 강화도에서 있었던 일화 한 토막은 그의 성품을 잘 말해준다.

홍수가 범람하여 물이 집안으로 밀려들었다. 하인이라고는 한 사람만 있어 먼저 아버지 은언군을 언덕으로 모시고 울면서 가족을 구해낼 것을 호소했다. 어린 나이에도 왕손으로서 귀양살이하는 어버지 은언군과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항상 곁을 떠나지 않고 즐겁게 해드렸다.


▲전계대원군묘ⓒ시민기자 서상경

그러한 전계군은 아들 원범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었다. 나이 57세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양주군 진관(오늘날 서울시 홍은동)에 안장되었다가 철종 7년에 포천의 선단동 왕방산 아래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임금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 그래서 그의 묘는 웬만한 왕릉 부럽지 않을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현재 묘역에는 2기의 묘가 자리하고 있는데 전계대원군의 묘는 부인 최씨와의 합장묘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전계대원군의 두 번째 부인인 용성부대부인 염씨의 묘가 있다. 용성부대부인은 바로 철종의 생모다.


▲신도비와 재실ⓒ시민기자 서상경


▲신도비각ⓒ시민기자 서상경

철종은 살아생전 왕비와 후궁 사이에서 5남 6녀를 두었다. 유일하게 영혜옹주 하나만 살아남아 자식 복이 없는 왕이 되고 말았다. 직계는 다시 단절되고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이 왕으로 지명되는데 그가 바로 고종이다.

빈농에서 왕까지 이른 철종과 평민에서 죽어 대원군에 이른 파란만장한 전계대원군의 삶은 훗날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억울한 누명과 애틋함으로.

예로부터 왕이 방문하여 유래했다는 왕방산과 산 위의 물이 거울같이 맑아 감지라 불렸다는 해룡산.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는 신비의 산 아래에서 편히 쉬도록 강화도령 철종은 40년 귀양살이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을 그리워하며 이곳에 모신 것은 아닐까.

전계대원군 묘는 포천시 향토유적 제1호다.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방문객을 위한 글이 새겨져 있다.

“전계대원군 이광(1785~1841)은 조선 제25대 철종의 아버지이며 은언군(사도세자의 장남)의 아들이다. 1779년 아버지 은언군이 벽파로부터 무고를 받고 강화도로 쫓겨나 그곳에서 불우한 일생을 보냈다. 1849년 헌종이 승하하고 아들 원범이 철종으로 즉위한 후에 전계군에서 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 전계대원군묘 정보

주소 : 포천시 선단동 산11(포천시 삼육사로 2105번길 22)
문화재지정번호 : 포천시 향토유적 제1호
문화재지정날짜 : 1986년 4월 9일
교통편 : 포천교통 1번(장승거리~무림리)

*참조 : 포천문화원 홈페이지(포천역사소개/인물소개) http://www.pcm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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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된 의견글 1
  • 신흥식 2020-02-27 삭제
    불우하고 외로운 유년시절 을 보내시며 아버지을 지극정성 으로모신 철종 임금 아버지 은원군에서전개군 대윈군 을 추모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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