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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산과 궁예의 전설
시민기자 서상경

산정호수와 억새꽃으로 유명한 명성산은 역사와 전설의 기행지다. 그 이름조차 울 명(鳴), 소리 성(聲), 뫼 산(山) 자를 써서 울음산이라 하지 않던가. 이곳뿐만이 아니다. 포천 일대의 산은 궁예의 전설을 빼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곳곳에 전설이 지명으로 남아 있다. 새하얀 억새 물결과 산속의 호수가 우물처럼 맑은 곳에서 슬픈 궁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직접 현장을 찾아보면 다가오는 애절함이 한층 더 할 것이다.

산정호수행 시내버스는 도봉산역 환승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1386번을 타면 가능하다.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직행버스는 동서울터미널이나 수유리에서 철원행 버스를 타고 운천에서 내리면 된다.

▲ 명성산 정상 표석  ⓒ 시민기자 서상경

산정호수 상동주차장에서 명성산으로 향하는 등산코스는 세 곳이다. 주차장 인근 식당골목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다. 비선폭포 앞에서 책바위 능선길과 계곡길로 나뉜다. 또 다른 코스는 자인사 뒤편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책바위 코스와 자인사 코스는 급경사 오르막이어서 초보자는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 등룡폭포를 지나는 계곡 코스를 이용한다. 1시간 30분을 들어가면 억새밭을 만나게 된다. 억새밭에서 팔각정까지 억새의 장관을 살펴볼 수 있다. 팔각정 옆에 설치되어 있는 1년 후에 받는 우체통도 매우 이색적이다. 오늘 추억을 남기고 내년에 편지로 받는 느낌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아름다운 산행지에서 만나는 궁예의 전설. 궁예의 탄생설화는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신라 헌안왕 또는 경문왕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운명이 불길하다 하여 버려진다. 이때 눈을 다쳐 애꾸가 된다. 10살 무렵 유모에게서 자신의 출생비화를 듣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한다. 891년 죽주의 호족 기훤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이듬해에는 원주의 호족 양길의 부하가 된다. 궁예는 장수로서 빼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신라에 등을 돌린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미륵불로 자처하게 된다. 그 후 지배자가 되어 896년 왕건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송악의 호족 가문이 자진해서 투항한 것이다. 901년 궁예는 나라를 세우고 고려라 했다가 3년 후에는 국호를 마진으로 고쳤다. 911년에는 다시 국호를 태봉이라 하고 철원에 도읍지를 정한다. 승승장구하던 궁예는 918년 호족세력을 견제하려다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철원을 탈출한다.


▲ 억새밭 입구  ⓒ 시민기자 서상경


▲ 억새  ⓒ 시민기자 서상경

궁예의 전성기가 철원이었다면 몰락기는 포천이라는 특징이 있다. 궁예가 왕건에게 저항했던 곳이 대부분 포천지역이라는 것이다. 관인면 중리의 보개산성은 철원에서 쫓겨 와 쌓은 성터이고 영중면 성동리의 성동리산성은 궁예가 하루 저녁을 숙영하기 위해서 백성과 군사를 동원하여 쌓은 성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이곳 싸움에서 패하여 파주골을 지나 명성산으로 이동하였는데 궁예가 왕건의 군사에게 패하여 도망하였다고 하여 패주동이라 하던 것이 지금은 파주골이 되었다. 궁예는 명성산에 은거하며 재기를 노렸으나 왕건의 군대가 포위하자 군사들 대부분은 명성산 앞 절벽에 떨어져 죽고 궁예 또한 망국의 슬픔으로 통곡하였다. 궁예의 군사와 그 일족들도 온 산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하여 ‘울음산’이 되었다. 산정호수 정면의 우뚝 솟은 망봉은 궁예의 군사들이 적의 동정을 살피던 곳이고 명성산 상봉의 궁예동굴은 궁예가 은신하던 자연동굴이며 항서받골은 궁예가 왕건에게서 투항 서한을 받은 곳이었다.

그 뿐인가. 나라를 잃은 궁예가 올라 회한에 잠겼다는 국망봉,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도망가다 길이 험해서 말에서 내려 걸었다는 도마치봉, 궁예의 부인 강씨가 남편에 의해 죽기 전에 살았다는 강씨봉 등도 전설 같은 이야기로 남아 있다.


▲ 궁예약수  ⓒ 시민기자 서상경


▲ 1년 후에 나에게 쓰는 편  ⓒ 시민기자 서상경

궁예의 최후는 ‘고려사’에 기록이 전한다. 명성산으로 도망친 궁예는 이틀 밤을 산속에서 숨어 지내다 배가 고파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마을로 내려와 보리이삭을 잘라 먹었다. 그러던 중 농부에게 발각되어 최후를 맞았다. 이때가 918년 봄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및 고려사가 궁예를 몰아낸 세력에 의해 편찬된 것임을 감안하면 궁예가 왕건을 상대로 항전을 벌이다가 죽었다고 하는 민간의 전승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궁예는 죽었고 곳곳에 전설을 남겼다.


▲ 능선에서 바라본 산정호수  ⓒ 시민기자 서상경

팔각정에서 궁예의 이야기를 더듬어본 후에는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까?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2.7km를 더 가면 해발 923m의 명성산 정상이다. 팔각정에서 1시간 거리인데 등산객이라면 능선길을 걸어볼 만하다. 그리하여 산안고개로 하산하면 된다.

그러나 등산초보자들은 팔각정에서 계곡길로 되돌아 나가거나 자인사 또는 책바위 코스로 하산을 하는 것이 좋다. 산정호수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훌륭해서 하산코스로 잡기에 손색이 없는 코스다. 책바위 코스는 예전에 위험지대였으나 요즘은 데크 계단이 안전하게 조성되어 있어 스릴감 있는 산행이 가능하다.

다만 올해는 수도권 제일의 억새꽃 관광지로 이름을 가진 명성산 일대의 억새꽃 축제가 개최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용하고 한적한 산행이 되었으면 한다. 명성산과 궁예의 전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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