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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인물] 첨단기계 꿈나무 - 16세 농부 김건화 군, 세계 명문 대학서 K분필로 각광 - 신형석 대표

 “PC방보다 논과 밭을” 첨단기계 꿈나무…
16세 농부 김건화 군

굴착기·트랙터·콤바인 자유자재로 다뤄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농부’가 꿈

포천시 이동면에 농업 꿈나무가 자란다. 이동중학교 3학년, 김건화(16세)군의 이야기다.
나이 때문에 농업 ‘꿈나무’라 칭해지지만 사실 김건화 군은 자타공인 ‘굴착기 능력자’다. 포천에 온 지 이제 갓 3년, 귀농은 부모님이 했지만, 농사에는 막내아들인 건화 군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굴착기뿐 아니다.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등 웬만한 농기계는 문제없이 다룬다. 포천으로 이주하여 세운 버섯재배시설과 농기구 보관소도 건화 군이 아버지와 함께 지었다.

16세 농부 김건화 군

◇ 농사를 통해 경험한 ‘생명의 신비’
처음 농업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부모님의 귀농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던 아버지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요양을 위해 물 맑고 공기 좋은 포천을 찾았고, 버섯 농사로 정착하게 됐다. 건화 군은 아버지가 버섯재배를 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일을 거들면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건화 군은 “채소는 마트에서 사는 것일 뿐, 자라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직접 키우면서 생명이 자라나는 것이 매우 신비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을 함께 하는 농사일은 정말 보람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PC방보다는 논과 밭을, 게임보다는 농기계 운전을 좋아한다는 건화 군. 지금은 다들 응원해 주고 있지만, 처음에는 가까운 친구들조차 건화 군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그러나 건화 군은 주변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농사일을 놓을 수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농작물을 키울수록 꿈이 굳건해지고 있다. 아직 한창 배울 것이 많은 16세 중학생이지만 마음가짐만큼은 이미 농업 전문가다.

◇ 최고의 지원군 ‘가족’
농업에 관심을 두는 아들의 모습에 부모님도 역시 복잡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아들이 적극적으로 부모님의 귀농 일을 돕는 것이 대견하지만 학생인 만큼 학업에 열중해 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 역시 적지 않았다. 길지 않은 귀농생활이지만 농사일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사, 농기계와 관계된 일이라면 눈을 빛내는 아들의 진지한 태도에 지금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건화 군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힘든 농사일을 한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아들이 행복해하는 일이기에 돕고 있다”라면서 “아직 어린데 농사로 땀을 흘리는 것은 여전히 안쓰럽지만, 농작물을 재배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고 말했다.

◇ 건화의 꿈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농부’가 되겠다는 건화 군. 이를 위해 상급 학교 진학도 농업 생명과학 분야 특성화 고등학교로 정했다. 바이오 시스템과 입학이 목표다.
건화 군은 “농사기술이나 농기계는 지금껏 많은 발전을 이뤄왔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이나 도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라며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을 위한 작물이 더욱더 손쉽게 생산되도록 연구, 개선해 장차 영세한 농업인과 농촌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꿈을 향해 가는 길은 즐겁지만, 항상 쉬운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농기계를 사용하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굴착기 작업 중 궤도(바퀴)가 빠져 크게 다칠뻔한 일도 있었다. 다행히 아버지의 도움으로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직 어린 건화 군이 혼자 겪기에는 무섭고 아찔한 경험이었다.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던 일이었으나 건화 군은 더욱 신중하게 농기계를 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뿐, 농사일에 대한 애정은 오히려 더욱더 단단해졌다. 실제로 이러한 건화 군의 이야기는 주변에도 널리 알려지며 농업방송 ‘나는 농부다’, MBC ‘생방송 오늘저녁’, KBS1 ‘인간극장’ 등의 TV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건화 군은 “농기계가 있으면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영세한 농업인에게는 여러 여건상 아직 먼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아직은 어리지만 앞으로 농업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가면서 포천지역 농업인에게 크게 도움이 될 농기계를 개발해 널리 보급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국 하버드 대학 사용 ㈜세종몰 분필…
사회약자 배려도 명품

세계 명문 대학서 K분필로 각광
유명 학원 강사 출신 신형석 대표

분필에도 명품이 있다. 멀리서도 또렷이 보이는 선명한 색감, 힘주어 판서해도 잘 부러지지 않는 단단함, 그리고 부드러운 필기감과 타제품보다 현저히 적은 가루 날림. 바로, ‘하고로모 분필’이다. 일본제품이었던 하고로모 분필이 몇 년 전 ‘귀화’해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되어 화제가 되었다. 화제의 중심에 ㈜세종몰의 신형석 대표(50)가 있다.

㈜세종몰 신형석 대표

◇ 포천에서 생산되는 세계적인 명성의 분필
포천 영북면에 위치한 ㈜세종몰에서는 하루 7만 개의 명품분필이 생산되고 있다. 가격이 다소 높지만, 일반 분필과 비교되는 월등한 품질로 날개돋친 듯 판매되고 있다. 구매자들은 ‘분필 한 자루로 온종일 쓸 수 있어 한 시간에도 여러 차례 부러지는 여타 분필보다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평이다.
수출도 활발하다. 생산된 분필의 약 40%는 해외로 수출된다. 2019년 기준 연 매출 16억 원. 올해는 20억 원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신형석 대표가 처음 인수해서 제조, 판매하기 시작한 2016년의 3억 원보다 거의 7배 증가한 수치다.
하고로모 분필은 강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쓰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당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는 마성의 분필이다. 한때 하고로모 분필의 생산중단 소식에 세계 유명 수학자들이 ‘10년 치 분필 사재기’를 했다는 에피소드는 이미 유튜브상에서 꽤 알려져 있다.

◇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명품
‘분필 계의 명품’이라 불리지만 하고로모 분필은 오만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을 담고 있다.
또렷한 색감으로 인터넷 수업 등 방송 강의에 탁월해 인기몰이 중인 ‘형광분필’. ㈜세종몰에서만 생산되는 이 분필은 사실 색약 등 색각이상으로 색구분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색약자에게는 초록바탕 칠판에 쓰인 특정 색상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본인 스스로가 밝히지 않는 한 남들은 알 수 없어서 학교 현장에서 배려받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세종몰 하고모로 분필은 이런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색상의 형광분필을 생산한다. 생산단가가 비싸고 수요가 많지 않아 이윤을 남기기 어렵지만, 나이 어린 학생들을 위한 것이므로 화장품이나 식품에 사용되는 최고 안전 등급의 재료만 사용한다. 이뿐 아니다. 판매수익의 1%는 반드시 환경이 어려운 아동을 위해 사용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실천해 오고 있다.

◇ 사라질 뻔한 일본기술을 우리기술로
유명 학원 강사였던 신형석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생산되던 하고로모 분필을 우연히 접하고 구해보려 했으나 국내 판매처가 없자 수입을 결정했다. 수입한 분필은 인터넷으로 판매하기도 했지만, 사실 강사인 본인이 좋은 분필을 쉽게 구해 수업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2015년, 하고로모 분필의 와타나베 타카야스 사장으로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폐업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 내 몇몇 업체에서 기술을 인수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하고로모의 핵심가치인 ‘품질’을 유지할 수 없어 일을 접는다고 했다. 이에 신 대표는 와타나베 사장을 직접 만나 본인이 하고로모 분필의 품질을 이어나가겠다고 설득했다. 뛰어난 분필 제작 기술이 국가·국적을 떠나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신 대표에게 있어 하고로모 분필은 반드시 다음 세대로 이어 전해져야만 하는 ‘기술유산’이었다.
처음 와타나베 사장은 신형석 대표를 만류했다. 제조업의 고됨을 잘 아는 탓이다. 그러나 품질 계승에의 뜻이 굳음을 보고는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하고로모 분필 품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계를 헐값에 넘기고 기계 이전을 위한 업체까지도 직접 알아봐 주었다. 처음 포천에 공장을 열때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일부러 방한하여 설치된 기계를 몸소 살피고 생산된 분필의 품질을 면밀히 체크했다. 마치 후계자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것과 같은 형태였다. 그렇게 하고로모 분필은 made in KOREA 표기를 단, 우리 기술이 되었다.

◇ 어려움의 극복과 성장
한편, 일본에서는 세계적으로 이미 유명한 자국의 브랜드와 기술이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NHK에서는 안타깝다며 방송을 하기도 했고,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와타나베 사장을 향해 공공연히 ‘매국노’라 비난하기도 했다. 제품 품질이 그대로 유지되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고로모 분필의 세계적인 품질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기로 한 신 대표의 어깨가 더욱더 무거워졌다.
신 대표는 세계적인 품질 계승이라는 목표만을 바라보며 달린 결과, 2016년 아버지가 살고 계신 포천에 공장을 열수 있었다. 포천은 지가도 저렴하고 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도 편리한 데다 인근에 산업단지도 조성되어 있어서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도시다.
현재 하고로모 분필은 SBC 중소기업진흥공단 HIT 500 좋은 제품에 선정되고 SISO FAIR 신제품경진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등 우수상품 인증을 받으며 국내외적으로 ‘분필계의 명품’으로서 굳건히 자리잡았다. 도올 김용옥 선생, 설민석 선생 등 유명 강사부터 작은 교습소에 이르기까지 학원강사의 8~90%가 하고로모 분필을 쓰고 있다. 미국의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등 해외 명문대학에도 포천에서 생산된 하고로모 분필을 사용하고 있다.
신형석 대표는 “계속된 기술개발 노력으로 분필을 넘어서 품질 좋고 실용적인 ‘K문구 붐’을 일으키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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