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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재경 일동중고 동문회 사무차장)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 30년. 일동면 수입3리, 어린 시절 고향을 떠올리면 늘 같은 그림에서 시작된다. 누런 황톳길, 먼지 날리는 신작로와 군용 지프, 푸른 제복의 군인들. 아침, 저녁으로 점호를 알리던 트럼펫 소리. 수탉이 회를 치는 새벽에 울리던 행진곡과 해거름의 평화로운 곡조가 시골 동네를 휘감았다. 당시 민간 차량은 하루 한 대도 보기 힘들었지만, 푸른 천으로 덮인 군용 지프는 수시로 한길을 오갔다. 동네 어르신보다 더 많은 군인, 그들의 철모와 총, 수통과 훈련받는 모습들…. 고향과 그들은 그렇게 하나였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 그들의 손길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때마다 군인들이 일을 거들었다. 농사일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막걸리다. 고향 막걸리는 특히나 그 맛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일이 힘에 부칠 때도, 삶이 고달플 때도 시름을 털어내려 들이켰던 막걸리……. 막걸리는 술 그 이상의 의미였다.
날이 추워지면 군인들은 마을 앞 개울 물길을 막아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썰매를 타며 하루해가 가는 줄 몰랐고, 그것도 지치면 팽이치기를 하며 놀았다. 다들 썰매를 타는데, 검은색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도 있었다. 은색 스케이트 날이 코너를 돌 때 번쩍 빛을 내면 어찌나 멋지고, 근사하던지.
겨울이 깊어지면 설이 찾아왔다. 곤궁하던 시절에도 설을 앞둔 동네는 부산스러웠다. 지짐을 부치고 쌀을 빻고….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네에서 제일 너른 회관 앞마당에 자리 잡은 뻥튀기 아저씨였다. 길고 검은 망을 묶은 기계에 옥수수, 쌀, 가래떡을 넣고 돌리면, 개구쟁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누런코를 훌쩍거리며 기다렸다. 긴 기다림 후, ‘뻥’ 소리와 함께 하얗게 쏟아져 나온 뻥튀기와 구름처럼 피어나던 김 사이로 쏟아지는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 뻥튀기는 겨우내 아이들의 간식거리로 최고였다.
회관 앞마당에선 계집아이들이 고무줄놀이, 땅따먹기하고 사내아이들은 자치기, 사방치기를 하며 놀았다. 명절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윷놀이, 널뛰기는 물론 동네잔치도 벌였다. 한복을 입은 명창들의 판소리가 흥겹던 동네 어르신의 환갑도, 일 년에 두어 번 명절에 쓸 돼지를 잡을 때도, 처음으로 본 영화 ‘노란샤스의 사나이’도 그 마당에서였다.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고향을 찾아도 여전히 반겨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주름에서 인고의 세월이 느껴진다. 간혹 그분들의 부고를 듣는 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과 내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고향 사람이고, 고향 동네 어딘가에 푸른 햇살 넘실대듯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 치열한 경쟁 속에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처럼, 떠올리면 아늑하고 푸근한 엄마 품 같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리라.
※ 지면 관계상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원문은 포천소식 (news.pocheon.go.kr 또는 앱) 독자투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