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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 향토유적 제30호 태봉 석조물
포천 영중면에서 산정호수 방향으로 43번 국도를 따라 흐르는 영평천 변에 작은 언덕이 있다. 이곳에는 포천 향토유적 제30호 태봉 석조물이 모여 있다. 안내문에는 익종 태대의 유물 일부, 금주리 태실에서 가져온 유물 그리고 태실과 관계없는 다른 석조물이 섞여 있다고 할 뿐 어떤 이유로 석조물이 이곳으로 모이게 되었는지 설명이 없다.
태실(胎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던 곳을 말하며 봉안하는 과정을 태봉(胎封)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포천시에서 확인된 조선 왕실의 태실은 만세교리 태봉, 무봉리 태봉, 이곳의 태봉 석조물 등이 있다.
태봉 석조물만 원래 위치를 벗어나 있어 그 정확한 위치가 궁금했다. 그래서 태봉 석조물 복원을 주도했던 자연보호 포천시 협의회 이응수 님의 도움을 얻어 성동리로 향했다.
성동2리 마을회관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불무산이 남북으로 길게 산줄기를 이루고 있는데 그 왼쪽 끝은 성동리 산성이며 가운데가 태봉 자리다. 오늘날 성동2리 향교골의 작은 봉우리다. 봉우리에 올라가 보니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을 뿐 어디에도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는 엄격하게 관리가 되었을 것이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굴을 피하지 못했고 석조물조차 사방으로 빼돌려졌다. 원래 10개의 석주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4개만 남아 있던 것을 산정리에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던 2개를 찾아서 갖다 놓았다고 한다.
태봉 석조물의 주인인 익종은 누구일까? 익종은 조선 제23대 순조의 장남 효명세자다. 불과 22살의 나이에 요절하는 바람에 왕위에 오르지 못해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올라 익종으로 추존되었다. 〈익종대왕태실가봉석난간조배의궤〉에는 태실을 조성했던 절차와 태실 가봉의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효명세자가 태어난 뒤에는 태실 조성 후보지로 포천, 춘천, 보은 등이 언급되었다가 포천으로 확정되었고 그 날짜는 1809년 12월 21일 오시(午時)였다.
효명세자가 1830년 5월 6일에 죽자 태실 가봉 절차 논의가 시작되는데 1836년 3월 21일 진시(辰時)로 결정되었다. 태실은 아기 태실과 가봉 태실로 구분되는바, 아기 태실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만든 태실이고 가봉 태실은 왕위에 오른 후 추가로 화려한 석물을 올려 치장한 태실을 말한다. 그래서 준비된 태실 관련 석물을 배치하고 금표를 세우게 되는데 익종은 임금의 아버지로 추존되었기에 화려한 석물이 배치되지 않았을까.
효명세자 즉 익종의 석조물은 입구에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는 보통 궁궐이나 왕릉, 향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이곳의 태실이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또 태실은 태실 가봉비와 장태석물로 나누는데 태봉 석조물은 귀부만 있을 뿐 귀부 위에 있어야 할 태실비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익종대왕태실가봉석난간조배의궤〉를 통해 태실비의 앞면에 익종대왕태실, 뒷면에 날짜가 새겨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장태석물의 경우 난간석이나 석주, 상석 등이 질서 없이 흩어져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
영중면 주민자치센터와 자연보호 포천시 협의회에서 일하던 이응수 씨는 5년 전부터 태실의 복원을 위해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경기도 문화유산과에서 그동안 문화 보호 사각지대에 있던 조선 왕실의 태봉을 보호 관리하기로 밝혔다. (경향신문 2020년 1월 9일 자)
잔존하고 있는 태실은 도 문화재 지정이나 승격 등을 통해 보호하고 위치가 불확실한 곳은 추가로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하니 우리의 태봉 석조물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시민기자 서상경
* 태봉 석조물 정보
・ 위치 :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 640-1(호국로 3140)
・ 지정번호 : 포천시 향토유적 제30호
・ 지정날짜 : 1986년 4월 9일
・ 태봉답사 : 성동리 불무산 아래 서울우유 뒷산 봉우리 약 300m 올라감(아무 흔적 없음)
・ 교통편 : 1386번(의정부역~산정호수) 시내버스 성동2리에서 하차.
* 참조문헌 : ≪조선 왕실의 안태와 태실 관련 의궤≫ (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