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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박광복
조선 16대 왕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 묘는 신북면 양지바른 곳에 있다. 1630년에 인평대군에 봉해졌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부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고, 1640년 볼모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에 풀려 귀국했다. 정치적인 야심이 없어 왕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그는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과 현종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두 왕의 통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효종의 통치 아래에서는, 청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외교와 군사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종의 통치 아래에서는, 현종의 통치 시기에도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외교적 능력과 정치적 영향력은 조선 왕조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인품과 학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뛰어난 문학과 예술적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시하지 않고 겸손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 시민기자 박광복
어디서 이런 바람이 불어와
꽃잎을 흩날리고
저녁 노을을 물들이는가
강물 위에 떠가는 배는
인간의 삶을 비유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인평대군의 품성과 인생 무상을 글로 남겼다.)
인평대군은 1671년 4월 13일에 4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기록에 없다. 신도비에는 업적, 가족 관계, 생애 등이 기록되어 있다. 신도비는 인평대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국도 43번길 신북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고 신평교차로에서 200m 올라가면 묘소가 있다 (신북면 신평리 산 46-1). 묘는 포천시에서 관리하여 잘 보존되고 있으며, 묘역 내 석물은 왕족의 무덤답게 균형미도 좋고 조각도 예술적 가치가 있다.
© 시민기자 박광복
우리 선인들은 이렇게 정치를 초월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풍류를 즐기며 이웃을 배려하며 살았다는 사실 하나로 위안받는다. 지금의 정치는 험담, 거짓, 위선으로 얼룩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인평대군의 짧은 인생사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볼모로 잡혀가서 수모를 당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평대군은 청나라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그의 인품과 지혜는 청나라에서도 존경받았으며 청나라는 그를 최대한 존중하고 예우했다.
인평대군은 조선에서 정치와 외교에 참여하면서, 청나라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외교적 능력과 지혜는 조선과 청나라 간의 갈등을 완화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인평대군의 삶과 업적은 우리에게 인격과 지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내와 존중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한다. 인평대군의 지혜와 품성으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된다.
© 시민기자 박광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