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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동심
2010-07-05 조회수 : 7203

정진혁(포천시 자작동)

어릴 적엔 자동차는 고사하고 자전거조차 귀한 존재였다. 창수면 시골에서 태어나 농사짓는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땀 흘리며 감자 캐고 고추 따서 어렵사리 마련한 자전거. 그때까지만 해도 3, 4km는 족히 떨어져 있는 논밭까지 매일 행군하듯 걸어 다녀야 했는데 자전거를 장만했으니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모른다.

며칠 전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울면서 돌아왔다. 자전거를 잃어버렸는데 벌써 두 번째다. 두 대 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속상함과 아빠로부터 들을 꾸지람에 대한 두려움이 범벅이 돼서 어쩔 줄 몰라 훌쩍거렸다.

아이는 1년 전부터 자전거를 사달라고 노래하듯이 졸라댔었다. 혹시 자전거를 타다가 브레이크 제동을 잘 못해 차에 치이거나 하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망설였으나 아이를 그렇게 온실 속에 키우는 게 옳지 않은 듯해서 결국 한 대 사준 게 10개월 전이다. 처음 새 자전거를 받고 깡충깡충 뛰며 기뻐하던 모습은 내가 수십 년 전 시골에서 그것을 장만했을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자전거를 잃어버리며 한 달 만에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사주면서 아이에게 “훔쳐간 사람도 나쁘지만, 네 물건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 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타거라”

그러나 그것도 허사. 또다시 잃어버렸으니 이 녀석도 아빠한테 얼굴 들 낯이 없는 듯 했다.

문득 수십 년 전 내가 그 자전거를 잃어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을에 수확한 검은콩을 큰 자루에 담아 읍내 장날에 싣고 나갔다. 값을 잘 받은 후 시장에서 국수 한 그릇 먹고 나온 순간 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순간 너무나 황당하고, 마치 가족을 잃은 듯한 공허함과 허탈함에 며칠간 밥맛도 없고 잠도 안 왔다. 그때 기분이나 지금 아이의 기분이 비슷할 것이다.

아이를 혼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훔쳐간 사람이 나쁘지 그게 어디 아이 탓인가.

정직하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아이의 동심에 멍이 들게 한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  아이들 가슴에 상처를 주지 않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 본 에세이는 무궁무진 포천 소식지 323호에도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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