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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전쟁의 흔적. ‘기지리 전투진지’
2015-06-22 조회수 : 5136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시작된 비극적인 전쟁은 3년 1개월 2일간의 전투 끝에 멈춰진 상태로 60여년이 흘렀다. 여전히 포천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 기리지 전투진지를 다녀왔다.


▲43번국도ⓒ시민기자 양혁 

43번 국도는 의정부에서 포천을 지나 철원을 잇는 도로이다. 포천시청에서 43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신북면사무소가 나오고 다시 1.5Km가량을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 언덕에 전투진지를 발견할 수 있다. 전투진지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차를 몰면 지나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기지리 전투진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45 ⓒ시민기자 양혁

이 진지는 남과 북의 대치상황에서 북한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1948년도에 38도선 부근에 설치한 4개의 진지 중 6.25전쟁으로 3개 초소는 훼손되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군사시설이다. 유유히 흐르는 포천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철근콘크리트로 제작된 벙커 ⓒ시민기자 양혁

무너진 벽과 밖으로 드러난 철근이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다. 벽의 두께는 1m 가량으로 매우 두꺼워 보였다. 하지만 이 두꺼운 벽은 이곳저곳이 파이고 무너져 내린 상태로 얼마나 많은 총탄과 포탄을 맞아야 이러한 상태가 되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곳은 전투진지가 아니라 주인 없이 버려진 무덤처럼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전투진지 입구와 내부 모습ⓒ시민기자 양혁

내부로 통하는 입구는 생각보다 좁아서 허리를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무겁고 서늘한 분위기가 엄습했다. 아마도 이 안에서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을 젊은 군인들의 넋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투진지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어 1~2개의 분대가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총탄에 부셔진 구멍들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지만, 과연 6.25전쟁 당시에는 저 구멍 사이로 무엇이 보였을까하는 생각에 엄숙함과 긴장감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지나 이제는 그 당시 상황을 겪었던 이도, 기억하는 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잠시 멈춰있는 상태일 뿐이다. 또한 현재의 평화와 자유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지리 전투진지는 현재 등록문화재 578호로 지정되어 그 자리에서 아직도 그 당시의 처참함을 대변해 주고 있다.

시민기자 양혁(eternia_y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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