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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고향은 포천입니다.
유난히 추었던 설 전날 당직근무 중이던 공무원 청년의 이야기
2012-02-09 조회수 : 5211


ⓒ포천시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인 설날은 8월의 추석과 함께 우리의 가장 큰 명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날만큼은 자주 보지 못하던 가족과 친지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고, 머릿속에서나 그려보던 고향의 산천도 직접 가서 볼 수 있으며, 그렇게 부지런한 우리 국민들이 하던 일을 며칠씩 손에서 내려놓아도 누가 뭐라지 않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고향으로 가는 그 먼 길을 불편함 속에서 가면서도 불평은 커녕 오히려 입가에는 미소들이 가득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인가 부터 우리의 그 명절을 명절답게 만들어 주는 누군가의 손길을 받는 것에만 익숙하지 않나 하는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의 기관사가 나와 동향사람이라서 그 기차를 운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맡겨 놓은 돈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은행에도 누군가는 남아서 그 안전을 책임질 것입니다.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불이 나거나 사고가 나거나 할 때 당연히 불러대는 그 사람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척이겠지요.

유난히 추웠던 올 해, 포천시청에는 시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행정서비스를 책임지기 위해 설날 전날 임에도 불구하고 당직을 서고 있는 그런 공무원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가 그날 겪은 이야기 입니다.



 

본 사진은 해당기사와 관련 없습니다.ⓒ포천시
일요일인 그날 아마 그는 당직을 서면서 마음은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집에 더 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정말 행정력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명감이 더 컷을 것입니다.

그렇게 어찌 보면 좀 외로울 수 있는 시간들이 가고 있을 오후 무렵, 포천 파출소에서 시청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시계는 벌써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포천 파출소에서는 포천 터미널 근처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계시는 노파 한 분을 보호하고 있으니 시청으로 인계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인적사항은 이미 경찰이 파악을 해 놓은 상태였고, 그 분의 집이 있는 고양시 덕양구로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파출소의 전화를 받고, 할머니를 시청 당직실로 모시고 온 그는 할머니께서 독거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왜 집이 있는 고양시에서 이 먼 포천까지 오게 되신 것인지 궁금했지만 시간도 너무 늦은 관계로 당직실에서 편안하고 따뜻하게 주무시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집에 돌아 가셔도 반겨줄 가족 없이 명절을 맞은 할머니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에 하루라도 편안히 모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꼭 집이 있는 고양시로 가시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는 차로 모셔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본인도 집으로 빨리 가고 싶은 생각이 많았겠지요. 가족들과 친지들, 따뜻한 저녁상과 흥겨운 대화, 오랜만에 터지는 웃음들 아마 그도 많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추운 날 몇 시간을 포천시내에서 헤매신 할머니는 차에 올라서도 추운 듯 몸을 떨었고, 손에 꽉 잡은 가방도 놓지 않았기 때문에 눈발 속에서 홀로 떨고 있는 가녀린 한 떨기 꽃처럼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 생각을 접고 그녀를 빨리 집에 모셔드리기 위해 미리 연락해 놓은 덕양구청으로 차를 몰면서 속도를 올렸습니다.

할머니는 드셔야 하는 약 생각과 해야 할 일들의 생각으로 처음 몇 분간은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는 그런 할머니의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할머니 왜 포천까지 오셔서 길도 모르시면서 고생을 하셨어요? 다른 가족들은 없으세요?"
할머니는 달리는 차 안에서 이제 집에 간다는 생각에 그래도 안심을 하셨는지 그제야 말문을 여셨습니다.
"포천이 내 친정이라우. 여길 떠난 지 벌써 수십 년이 되었지만 내가 나서 자란 곳이라우."
그렇게 시작된 할머니의 사연은 깊게 패인 그녀의 주름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사 그 자체였습니다.


ⓒ포천시 

올 해 여든 여섯의 할머니는 막 피어난 꽃보다 예쁜 열여덟에 시집을 가셨다고 합니다. 슬하에 4남매를 두고 그렇게 부족하지만 단란하게 살아가셨던 할머니는 그만 서른다섯 무렵 할아버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시고, 아이들을 위해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고, 허리를 맘대로 펼 날이 없는 고생스런 인생을 사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키워 준 공도 없이 자녀들은 현재 경제 형편이 다들 좋지 않아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고, 그나마 얼마 전부터는 아예 연락마저 끊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오지도 않은 자식들을 기다리시면서, 몇 년 동안을 자식들과 함께 단란하고 따뜻한 명절을 보내리라고 꿈꾸던 할머니는 요즘 부쩍 기력이 쇠하고 지병인 당뇨병이 심해지면서 고혈압까지 겹쳐 이제 살날이 얼만 안 남은 것으로 생각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인생의 마지막은 포천에서 보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아직도 기억 속에 포천은 나 어릴 적처럼 그렇게 싱그럽고 파란 고향이요. 아무래도 내가 이번 명절이 마지막이지 싶어요. 꼭 죽기 전에 고향 포천을 보고 나서 죽더라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내가 그만 어디가 어딘지 통 모르겠더라고……. 아예 포천에서 터를 잡고 내 마지막을 준비하고 싶었다우. 이젠 고향에서도 길을 잃어버리니 늙으면 죽어야지 원……." 


ⓒ포천시

그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뭔가 목에서는 나오려 하는데 차마 입 밖으로는 할 수 없는 많이 이야기들을 그냥 삼켜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냥 늘 보는 포천의 산천과 길거리, 나무들, 집들이 누군가에는 꿈에서 그리는 고향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할머니를 덕양구청에 모셔드리고 나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할머니는 오늘 밤도 그렇게 그리시던 포천의 산천과 거리들을 꿈에서 만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더 이상 나이와 병마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몸의 할머니가 아니라 꽃처럼 피어나던 어릴 적처럼 힘차게, 그리고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그렇게 여기 저기 뛰어 다니고 계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있는 포천의 산천이 그리워 그렇게 힘든 발걸음을 한 할머니가 그분 한분만은 아니실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이 포천이 참으로 소중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돌아 왔습니다.

시민기자 이정식(wellth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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