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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서상경
중학교 1학년쯤이었다.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고 각자 시 한 편을 지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래서 어느 책자의 귀퉁이에서 찾아 적어낸 것이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였다. 적어온 시를 발표하는 시간에 망신을 당하고 시를 애써 외면하며 잊고 살았다. 진달래가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모르면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그렇게 외우고 다닌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시가 좋아서 시와 어울려 사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알고 싶지 않았던 시였지만 그의 이야기는 듣고 싶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려오는 12월의 어느 날 포천시 신읍동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를 찾았다. 자유분방하게 턱수염을 늘어뜨리고 반갑게 맞아준 이는 이우창 시인이다.
▲포천시 신읍동 도시재생 현장 지원센터ⓒ시민기자 서상경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했어요?”
단도직입으로 물었더니 4년 정도 되었단다. 지인들끼리 독서모임인 포천죠이북을 하다가 대진대학교 교수 한 분을 초청하여 특별강의를 듣게 되었다. 시와 가까워질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단다. 첫째는 시를 읽는 것이고 둘째는 시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읽기로 했다. 처음에 접한 시가 이상의 ‘오감도’다. 반복해서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어려웠다. 그래서 교수님께 ‘너무 어려운 시’라고 했더니 교수님 왈 “그건 해설도 어려운 시야” 하셨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도 읽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천 번은 읽었을 거다. 읽을수록 가슴속에 들어오는 느낌은 감명이고 눈물이었다.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도 가슴속에 다가왔다.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그렇게 해서 시는 점점 가까워졌고 즐기게 되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했던가. 즐거움이 생기면 열정이 생긴다.
▲시럽 동인 시선집 『백여시들 수다를 떨고』ⓒ시민기자 서상경
“어느 순간, 시에 빠져들었군요?”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좋은 시는 필사를 하게 되었다. 시를 읽을 때 느낌이 좋은 시라고 느껴지면 그대로 베껴 써보는 것이다. 좋은 시는 시 하나를 여러 사람이 읽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 번을 읽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그래서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같은 좋은 시적인 언어는 저절로 기억이 되었고 직접 시를 창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깨달음도 생겼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지나고 나니 교수님은 문학적인 DNA가 있다고 했다. 열정을 높이 산 것 같다.
좋은 시는 혼자 읽고 쓰기도 하지만 그것을 주변 분들하고 나누기도 한다. 새벽 아침이면 단톡방과 밴드, 페이스북에서 나눔 詩 배달을 하고 있다. 시 동인 ‘시럽’에 참여하여 시를 좋아하는 분들과 모임을 갖고 물어뜯는 합평의 시간도 가지면서 시집 ‘백여시들 수다를 떨고’를 2020년 2월에 출간했다. 여기에 자작시 10편이 포함되어 있다.
▲연극 토정 이지함 역ⓒ시민기자 서상경
유일아파트 다리 밑에 5년 전부터 노숙자 한 분이 있었다. 봉사활동 하면서 하루에 한 끼 정도 끼니도 챙겨주면서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내왔다. 한 번씩 먹을 거를 들고 찾아가면 냄새 나니 다가오지 말라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2020년 12월30일에는 평소 보살피던 사회취약계층으로서 알코올 중독이 있는 다른 한 분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 주검을 수습하면서 그 분과 함께한 시간을 시로 썼다. 옆에서 항상 지켜봐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제목은 ‘숨구멍과 콧수염’이다.
“1957년 충청북도 중원군 신니면 견학리 향촌에서 난, 주덕초등학교 5학년 때 다 배웠다며 아버지가 학교를 끊은, 티코 탄 동생, 어머니, 누이가 죽은 후 그라목손 제초제를 잡은, 강화도 정신병원에 갇혀 짝짝이 슬리퍼를 베고 떨어진 눈물을 세던, 기초수급 50만원과 주거급여 21만원에 한 달을 사는 철탑공사 따라 다녔던, 콧수염. ~”
그의 시는 사람의 냄새가 난다. “天地與我同根(천지여아동근)이요 萬物與我一體(만물여아일체)라. 하늘과 땅은 나와 한 뿌리요, 세상 만물은 나와 한 몸이나 다를 바 없다.” 유독 사회취약계층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나온 대답이다. 그래서 하루 일과가 끝나면 포천시 신읍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내 도시재생주민협의체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하는 일은 주거·환경 분과 부위원장이라며 웃었다. 월급이 좀 있느냐고 했더니 순수한 봉사활동이란다. 삼 년 전부터 신읍7통 싸전마당 동네 주변에서 주거환경 개선 차원으로 쓰레기를 주우며 어려운 이웃의 쓰레기 정리를 매주 토요일마다 하고 있다. 그것은 신읍동 경기행복마을관리소 지킴이 활동부터였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역할을 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소식지를 내고 연극 토정 이지함에서 주인공 역할도 했다. 그리고 항상 새벽 시간을 내어 책을 읽고 시를 쓴다. 여기 사는 우리 이웃들이 행복해서 웃음이 떠나지 않을 때까지 어울리며 시를 쓰겠노라 했다.
▲시인 이우창ⓒ시민기자 서상경
소풍가는 입술 – 이우창
입술 가져왔니
얇은 윗입술.
두터운 아랫입술.
신축 읍사무소 입술에서 입술이 없는 입술이 버스 입술에 오른다
가방 입술에서 입술을 꺼내
맞은 편 입술 없는 얼굴에 입술을 단다
도시락 입술이 스마트폰 입술에 앨범 입술을 찍어 바른다
깁밥 입술이 사이다 입술을 배낭 입술에서 끄집어내어 뚜껑 입술에 병따개 입술을 입맞춤한다
홍어 입술은 도라지 입술을 깨물고 무 입술과 미나리 입술은 고추 입술에 삐죽댄다
아래턱 입술에서 날마다 뼈 입술을 새기는 가을소풍의 모세혈관 입술이
반달 입술을 맷돌 입술에 넣고 순두부처럼 말랑말랑한 맞춤입술을 찾아서
입술망초로 피어오른다.
